[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와 국회가 누리과정(만3~5세 무상보육)에 5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보육대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더구나 예산부족으로 이번에 내놓은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까지 좌초될 위기에 놓여 정부가 마련한 대책을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9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지자체 등에 따르면 이달 중으로 광주·대전시 등 주요 지자체의 누리과정 예산이 고갈된다. 내달 중에는 전국 대부분 광역시·도의 보육예산이 같은 상황에 놓일 위기다. 정부와 국회가 애초 약속한 예산지원을 미뤄서다.
지난해 10월 전국 지자체와 교육감들은 정부와 누리과정 예산문제로 갈등을 겪은 끝에 예산부족분 1조7000억원 중 1조2000억원은 지자체가 맡고 5000억원은 정부가 지원해달라는 합의안을 제시했다. 이런 제안에 기재부는 5064억원을 목적예비비로 편성해 보육예산에 메꿔주기로 했다. 하지만 넉달이 지나도록 5064억원은 지원이 안 됐다.
◇지난 2014년 9월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들이 정부의 무상보육 공약 이행과 지방자체단체 보육예산 지원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News1
정부와 지자체의 보육예산 갈등을 봉합하고 학부모들을 안심시킬 방안이 나왔음에도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의지 부족이 누리과정을 좌초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우선 교육예산 주무부처인 기재부가 보육예산 문제에는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이다. 실제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당정협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 민생탐방 등을 통해 밝힌 관심사는 세수확보, 경제살리기 입법화, 구조개혁을 통한 고용창출 등에만 집중됐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5064억원 편성을 마쳤고 국회만 OK 하면 된다"며 "최 부총리는 지난주에도 국회에서 보육예산 법안 통과를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다른 국정과제를 입법화한 과정은 누리과정 예산안 처리과정과 큰 차이를 빗는다.
정부는 지난해 의료계의 반대에도 의료민영화 법안(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설립 허용, 원격의료 시범사업) 등을 반년 만에 통과시켰다. 당시 문형표 보건보지부 장관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보건·의료산업을 활성화시키자며 법안 통과를 재촉했었다.
서민증세라는 비난을 받은 담뱃값 인상안, 연말정산 폭탄을 가져 온 소득세법 개정안 등도 관계부처가 잇따라 공청회, 당·정 협의회를 연 끝에 일사천리로 추진했다.
국회에서도 보육예산 법안이 경제관련 법안이나 다른 현안보다 우선순위가 밀린 모양새다. 더구나 최근 증세파동과 연말정산, 인사청문회, 여·야 원내대표 선출과 전당대회 등으로 국회가 사실상 개점 휴업하면서 보육예산 처리는 더 지연됐다.
이처럼 국정과제인 누리과정이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탓에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최근 법안 통과가 무산된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등과 맞물려 정부의 '보육 땜질처방'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복지부가 1월에 발표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근절대책에는 ▲어린이집 CCTV 설치 ▲아동학대 신고포상금 인상 ▲보육교사 국가시험 도입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CCTV 비용과 포상금·국가시험·국공립 시설 마련 등에 들어갈 예산은 전혀 언급하지 않아 정부가 재정방안 없이 졸속으로 대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14년 11월6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에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재정확대를 요구하고 있다.ⓒNews1
보육예산 논란을 봤을 때 정부가 보육분야에 돈 쓰기를 주저해 안심보육 여건 조성을 위한 재정부담도 지자체나 어린이집 등에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실제로 CCTV 설치의 경우 정부는 정부, 지자체, 어린이집이 비용을 공동 부담하게 했다가 빈축만 샀다.
더구나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은 정부의 법안 통과 자신에도 불구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못 넘어 다른 아동학대 근절대책까지 줄줄이 지연될 상황에 놓였다.
이럴수록 지자체와 학부모만 애가 탄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는 지자체에 예산지원을 약속했고 지방채를 발행해 급한 대로 예산을 충당하라고까지 했다"며 "그러나 지원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도(道)는 당장 보육대란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