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기업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할 사외이사가 현실에서는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또한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시하고 권력기관 출신으로 채우면서 방패막이 역할만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외이사 무용론마저 제기되는 이유다.
10일 CEO스코어가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제출한(6일 기준) 37개 그룹 167개 기업의 지난해 사외이사 활동내역을 조사한 결과, 총 692명의 사외이사들이 3774건의 안건에 대해 1만3284표의 의결권을 행사했으며, 이중 99.7%인 1만3243표가 찬성으로 집계됐다.
특히 조사대상 37개 그룹 가운데 찬성률 100%를 기록한 것도 25곳에 달했다. 그나마 언론의 집중감시를 받는 10대 재벌그룹 외의 기업집단일수록 사외이사들이 찬성표를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10대그룹 중에서 100% 찬성률을 보인 곳은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한진 등 4곳이었다. 롯데는 43명의 사외이사가 278건의 안건에 대해 1130표의 의결권을 행사했고, 찬성률은 100%였다.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역시 각각 24명과 4명의 사외이사들이 423표와 43표를 던졌는데, 모두 찬성이었다.
10대그룹 이하 상위 20위권 그룹에서는 KT, 두산, 신세계, CJ, LS, 금호아시아나, 동부 등 8곳 중 무려 7곳의 사외이사 찬성률이 100%였다. 21~30위 그룹에서는 현대, 에쓰오일, 현대백화점, 효성, 영풍 등 5곳의 사외이사들이 100% 찬성표를 행사했다.
30위권 밖(31~49위)에서는 조사대상 12개 그룹 중 한진중공업, KCC, 태광, 대성, 세아, 태영, 아모레퍼시픽, 삼천리, 한솔 등 9곳(75%)의 사외이사들이 100% 찬성표를 던졌다.
기업 경영과 총수 일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전횡을 막을 유일한 감시기관인 사외이사 제도가 거수기로 전락함과 동시에, 기업은 이들을 외풍으로부터 막을 방패막이 또는 정부와 국회 등을 상대로 한 로비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등 10대그룹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신규·재선임)하는 사외이사 119명 가운데 47명(39.5%)이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권력기관 출신으로 나타났다. 권력기관 출신 비중은 지난해 38.7%(50명)와 비슷했지만 올해는 전직 장·차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직업별로 보면 정부 고위직 출신이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판·검사 12명, 공정위 8명, 국세청 7명, 금융위원회 2명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장차관 출신 인사들이 약진했다. 정부 고위직 18명 가운데 장·차관 출신은 12명(66.7%)으로 지난해 6명(27.2%)의 두 배였다.
이에 대해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견제·감시 등 사외이사의 제 기능을 위해서는 사외이사 선정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현재 사외이사 추천위원회는 대부분 대표이사 등 오너 일가로 구성돼 있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외국처럼 사외이사 선발시 소액주주를 참여시키는 등 선정 절차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