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기억이 공존하는 곳, 9.11메모리얼

즉흥 산책

입력 : 2015-03-23 오전 9:36:00
지난해 야심차게 떠났던 뉴욕 여행 둘째 날, 나는 일정표대로 9/11메모리얼을 찾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날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웬걸 그날은 마침 9/11테러를 추모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 주변은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인해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었고 뉴욕에서 약 3천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그라운드 제로에 지어진 곳이 바로 9/11 메모리얼이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당시 뉴스를 통해 본 장면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뉴스는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히는 모습, 그 큰 빌딩이 뿌연 연기와 함께 힘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빌딩 아래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여과 없이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난 초등학생에 불과했고, 저 먼 나라에서 발생했던 사건이어서 충격이 가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저 “나쁜 놈들… 슬프다.” 라고 넘겨버렸었다. 그리고 그 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 2014년이 되었다. 13년 전에는 내가 뉴욕에 오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그저 그렇게 넘겨버렸을지도.
 
9/11메모리얼은 이미 관광지가 된 지 오래였다. 가는 길에는 수많은 상인이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었고 그 주변은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평상시에도 북적인다지만 그날따라 더욱 심했다.
 
기대하며 박물관 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데,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표는 매진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저 앞에서 이미 끊긴 것이었다. 진한 아쉬움을 달래고 그 주변을 서성이기만 했다.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모를 기운에 사로잡혀 기분이 묘해졌다. 먹먹했다면 맞는 표현일까. 아무리 관광지라지만 마냥 웃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사람들의 슬픈 마음을 모른 체하기로 마음먹은 건 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다 보니 시원한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상쾌한 냄새까지 나기 시작했다. 인공폭포였다. 911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그 당시 무역 센터가 우뚝 섰던 자리에 만들어진 인공폭포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진=바람아시아
 
멈추지 않는 눈물을 의미한다는 인공폭포. 뻥 뚫린 한 칸 그리고 두 칸. 그곳에서 눈물들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희생당한 사람들 그리고 그 유족들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을 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인데도 슬픈 기운이 감돌았다.
 
◇사진=바람아시아
◇사진=바람아시아
 
인공폭포를 감싸고 있는 청동 난간에 새겨진 이름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희생자들 중에 이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 문득 보이는 한국인의 이름을 보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감정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그들의 잃은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그 이전에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을까.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왔고 이유 모를 테러로 인해 희생을 당하게 된 걸까. 그 안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왜 하필이면 그날, 그때, 그 장소였을까. 테러는 그 한 사람, 한 사람뿐만이 아닌 유족들의 삶까지 앗아갔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걸까. 테러나 전쟁 그 이면에서의 희생자는 항상 무고한 시민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날, 우연히 좌판에서 911테러 이야기가 담긴 만화책을 하나 구입했다. 테러로 인해 남편을 잃은 아내가 쓴 책이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아내와 남편은 뉴욕으로 이민 온 인도인들이었고, 둘은 어렵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했다. 둘은 만만찮은 이민사회에 적응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지만, 이런저런 문제로 발생하는 부부간의 다툼에 지칠 때로 지쳐 있었다. 사소한 트집으로 심하게 다툼을 하며 맞이했던 아침, 그날이 바로 2001년 9월 11일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직장은 월드트레이드 센터였다. 아내는 뉴스를 통해 남편의 죽음을 확인했다. 아이는 아직 어렸다.
 
아내는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덤덤하게 만화로 풀어나갔다. 만화로나마 기억되길 바랐던 것일까. 그냥 지나가 버릴 것만 같았고 그날 역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던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날. 테러는 잔인하게도 한순간에 그녀, 그녀의 아이 그리고 그의 부모님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인공폭포 앞에 서 있었을 때, 내 옆에 선 노신사가 한 이름 앞에 헌화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자식일지 부모일지 친구일지 알 턱은 없었지만, 그 역시 그만의 추억에 잠겨있는 모양이었다. 함께 기억하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상실되었지만,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에.
 
 
박다미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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