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공무원연금을 결국 개혁하기는 할 모양새다. 한달 사이 정부와 국회가 각자 연금개혁안을 내밀고 막판 조율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고 있어서다.
덕분에 그간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에 참여하며 정부, 여·야 등과 이 문제를 논의해 온 공무원노조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공무원노조가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야당 당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는 것은 애처로운 마지막 저항으로 보여진다.
애초 대타협기구는 연금개혁 이해관계자가 모여 공적연금과 관련된 사회적합의를 보자고 모인 기구지만 정부는 사회적 합의는커녕 이해관계자의 뒤통수만 친 듯 보인다.
이런 방식이라면 공무원연금 개혁이 어떤 식으로 결론을 맺든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우선하겠다"는 정부의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에 쫓겨 국정과제를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정부가 대타협기구를 꾸린 의도도 의심스러워진다. 공무원노조에서는 대타협기구 참여를 놓고 찬반이 엇갈렸었다. 정부와 함께하는 기구에 들어가 최대한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정부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연금개혁이 공무원의 의사와 반대된, 정부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도 공무원노조가 함께 논의한 결과니까 문제 없다는 모양새를 만들어줄 수 있다"며 "노조는 타협기구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할 명분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금 모습대로라면 공무원노조의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정부의 이런 국정과제 추진 방식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7월 18일 정부가 쌀 관세화를 결정한 과정도 이랬다.
지난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쌀 관세화 유예종료를 앞두고 상반기 내내 쌀 관세화는 결정된 바 없다고 잡아뗐다. 관세화 가능성을 언급한 보도에는 일일이 해명자료를 냈고 관세화를 결정하기 보름 전까지도 최종입장을 못 정했다고 밝히다가 기습적으로 관세화를 발표했다. 쌀 관세화 결정에 따른 농업계 반발을 의식해 시간만 끈 셈이다.
쌀 관세율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는 농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며 농민단체와 '쌀 산업 발전협의회'를 꾸렸다. 하지만 쌀 관세화를 WTO에 통보하기 직전까지도 협의회 회의 내용과 관세율 결정에는 함구하다 기습적으로 513%의 관세율을 결정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원격의료 시범사업 실시,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 관심 표명 등도 모두 기습적으로, 이해관계자의 뒷통수를 치는 방식이었다.
역대 정권은 언제나 거창한 국정과제를 내걸고 대통령의 치적을 쌓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사회구성원 간 소통과 화합을 통해 국가경쟁력과 성장잠재력 확충하는 사회적합의를 국정과제 추진전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정부가 보인 모습은 국정과제 추진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가장한 뒤통수치기와 날치기 뿐이다. 이 정부가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국정과제에서 국민을 속일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