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은 왜 박근혜일까. 다양한 분석이 있고, 각색의 답변이 있다. 혹시, ‘숙취’가 아닐는지?
술잔이 깨질 듯이 맞부딪히며, 부어라 마셔라 외치는 술자리.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런 시간을 지났는지도 모른다. 평균 7%, 기적에 가까운 폭으로 이 나라 살림살이는 나아졌다. 폐허 위에 마천루를 세웠고, 이제 굶어 죽는 사람은 흔치 않다. 빌딩이 숲을 이루고, 굶어 죽은 이의 소식은 전 사회적 이슈다. 술에 취할 때, 얼마나 마셨는지 가늠치 않고 마냥 들이킬 때가 잦다. 식민지라는 스트레스를 겪은 우리는 성장이라는 술을 잔뜩 마셨나 보다.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을라치면 행패 부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성장의 술자리를 주도하던 박정희가 제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를 좇는 어느 민머리 독재자가 나타나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거리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 정도로. 그러나 권력은 강할수록 단명하기 마련, 제풀에 쓰러지거나 곧 내쫓긴다. 민머리가 물러난 자리의 분위기는 다시 뜨거워졌다. ‘좋았던 시절’, 즉 호황이라 부르는 때가 그렇다. 그때를 산 자들이 돌이키길,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
이윽고, 취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온다. 혼자서는 걷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주망태, 부축이 필요하다. 비틀대며 주사를 부리기도 하는데,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울 때도 있다. 1997년, 만취한 우리는 아이엠에프가 이끄는 데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울었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때 앉은 자살률 1위 자리가 여전하다.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와 말 그대로 뻗는다. 그동안 몸은 독소를 분해한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김대중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는 독재의 잔재를 떨쳐내는 시간이었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하는 의식도 싹텄다. 성장을 무조건 추종함을 반성키도 했다.
잠이 깨도, 술은 안 깬다. 빠져나가는 독소를 온몸이 느낀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는 깨질 것 같다. 심하면 구토까지 한다. ‘이명박’이 그런 증상이다. 술을 게우는 시간, 4대강을 비롯해 그가 저지른 사기에 가까운 숱한 사업은 그 게워냄이지 싶다.
독소를 게워내는 시간이 지나면, 정신이 몽롱하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누운 시간이다. 숙취 아래 어젯밤의 즐거운 장면 몇 가지를 꼽는, 지금이 그런 시간 아닐까. 박근혜 정부를 보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냥 되는 대로, 뭐든 주먹구구로 끼워 맞추는 모양새다. ‘제2의 한강의 기적’, ‘제2의 새마을 운동’, ‘제2의 중동 붐’이라는 둥, 죄다 ‘술자리’ 때 좋았던 일 다시 말하기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숙취를 하고 있다.
◇KBS 뉴스 캡쳐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