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위해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묵묵히 일 하는 우리 사회의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환경미화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겨울이면 매서운 칼바람과, 여름이면 무더운 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하는 그들의 일상을 기사에 담고자 나섰다. 환경미화원의 소속은 크게 용역업체와 구청으로 나뉘는데, 그 중 취재한 것은 후자다. 서초구청이 집에서 가장 가까워 ‘그 주위에서 일하고 있는 환경미화원을 따라다니면 되겠다.’는 생각에 어느 날 새벽 무작정 집을 나섰다.
허나 너무 비계획적이었던 탓일까,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환경미화원을 따라다니며 취재를 하기 위해선 구청의 허가를 미리 받아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서초구청의 소통담당관을 통해 청소행정과의 허락을 받은 후 일주일이나 지나 비로소 취재 날짜가 결정됐다.
때는 3월 19일 새벽 5시. 버스 첫차도 없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택시를 타고 양재역 근처에 있는 서초구민회관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달려갔다. 대낮이면 그렇게 사람들로 붐비던 양재역 거리는 길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서초구민회관 주차장에 들어서니 먼발치서 커다란 컨테이너가 보였고,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둠속의 컨테이너는 어딘가 모르게 춥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이에 대조적으로 환경미화원들은 모두 녹색 빛의 야광 옷을 입고 있었기에 무척 눈에 띄었다. 컨테이너는 환경미화원들이 일을 나가기 전이나, 일을 하는 도중 쉬는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안에는 간이의자 몇 개가 있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자와 음료수 등이 비치돼 있다고 한다.
◇사진=바람아시아
작업복은 집에서 미리 입고 출근하기에 따로 탈의실은 없다. 이른 봄의 꽃샘추위 속에 일하는 그들이기에, 작업복 밑에 옷을 겹겹이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음을 깨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사이에, 작업반장인 김영민 씨는 환경미화원 추진호 씨를 소개해줬다. 그들의 일과는 정확히 새벽 5시 30분께 시작됐다.
◇사진=바람아시아
추 씨의 담당구역은 서초구민회관서부터 강남 뱅뱅사거리까지다. 그는 서초구청의 환경미화원으로 10년 째 일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구청의 환경미화원들은 공무원 공채 시험을 치르고 들어오기에 다른 구청으로의 자리이동은 없다고 한다. 그는 최근에 서울시산업순찰에 의해 서초구청의 모범사원으로 뽑힐 만큼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업이면서 열심히 일한 만큼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10년 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일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고, 일을 좀 더 편히 할 수 있게 되죠.”
그는 도로에 나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덩굴 사이사이, 화단 밑, 배수관 틈 사이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담았다. 사람들은 주로 조그마한 구멍이나 틈이 있으면 쓰레기를 끼워 넣으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런 틈을 특히 주의 깊게 치워야 한다고 했다. 또, 길바닥에 거뭇하게 눌러 붙은 껌들도 일일이 긁어 떼면서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사람들이 무심코 뱉는 껌이랑 가래침을 치우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라고 덧붙였다.
◇버스 정류소 벤치 위의 쓰레기들(사진=바람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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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러 붙은 껌(사진=바람아시아)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흥업소 낱장 광고들이 거리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어 치워야 하는 쓰레기양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낱장 광고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환경미화원들의 출근길은 훨씬 산뜻해졌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역마다 있던 재떨이도 구청장이 이번에 없애는 바람에 일을 하기 훨씬 수월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재떨이’ 이야기에 문득 지나가다 본 ‘이 거리는 금연구역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뇌리에 스쳤다. 금연구역 거리라고 하기엔 버려진 담배꽁초의 개수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추 씨에 의하면 일반가정집에서도 재떨이를 무단 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나 하나쯤이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여러 사람이 같은 짓을 저지르다보니, 거리의 미관도 안 좋아질 뿐더러 치워야 할 쓰레기도 많아진다며 짧은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일하는 그였다.
정신없이 쓰레기를 쓸고 줍는 새 양재대로에 도착했다. 100 리터짜리 쓰레기 봉지가 벌써 삼분의 일이나 채워진 걸 보고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오전 7시 30분까지의 새벽근무를 끝내면 총 100 리터짜리 쓰레기 봉지 2개는 거뜬히 채워지기에, 이 정도 쓰레기가 나오는 것은 일상이라며 그는 슬쩍 웃어 넘겼다. 아직까지도 사람은커녕 항상 교통이 혼잡하던 양재대로 위를 달리는 차도 별로 없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이들은 각자 바삐 출근길을 재촉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추 씨의 말을 받아 적는 나의 손도 점점 굳어갔다.
사실 추 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강남역 일대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곳은 유동인구가 많아 쓰레기양이 엄청나기에 1시간이나 더 이른 새벽 4시 30분부터 근무를 시작해야지 겨우 일을 끝마칠 정도라고 한다. 특히 강남 클럽 일대에는 젊은이들이 밤을 불태우며 자신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쓰레기, 토사물까지 모두 버리고 오기에 환경미화원들은 주말이 끝난 월요일 새벽부터 곤욕을 치러야 한다. 그는 자신의 현재 담당구역은 근무환경이 비교적 쾌적한 편이라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뱅뱅사거리로 이어지는 대로 중간에 있는 버스 정류소의 쓰레기통을 모두 비우면 새벽 근무가 끝난다. 정류소에 가기 위한 찻길을 건너면서도 그는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담는데 집중했다. 운전하면서 담배를 피우다 아무 생각 없이 도로 위로 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내 도착한 버스정류소에는 쓰레기통이 총 3개 있었다. 그는 하나하나 열어 쓰레기를 다 비우고, 새로운 봉지로 갈아 넣었다. 통 안의 쓰레기는 휴지서부터 다이어리, 소설책까지 참 다양했다. 추 씨는 책과 같이 재활용해야하는 물건들이 일반 쓰레기통에 버려지면, 재활용 팀에서 따로 나와 분리수거 작업을 거쳐야하기에 일이 더 복잡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쓰레기통은 비우지 못 한 채 다시 길을 건너왔다.
◇쓰레기통 비닐을 갈아 넣었다.(사진=바람아시아)
드디어 새벽근무가 모두 끝났다. 정말로 100리터짜리 쓰레기봉지 두 개가 가득 채워졌다. 이를 대로 위에 두고 가면, 곧 쓰레기 수거차가 지나가 가져간다고 한다. 시간은 일곱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고, 거리는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도 제법 많아져 항상 보던 양재역 일대의 풍경을 마주했다.
“걸으면서 일하는 건 별로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아침에 운동도 되고, 체력도 기를 수 있어 정말 좋거든요. 다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 조금 힘들죠. 10년을 일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나 봐요. 하하. 그래도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모든 걸 이겨 낼 만큼 훨씬 커요.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거리를 깨끗이 해 놓으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그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그와의 대화 속에선 ‘긍정의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하는 내내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강조하며, 길고 피곤한 근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길에 세워진 자전거들의 바구니마다 쓰레기가 하나씩은 꼭 있었는데, 지나칠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런 데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 사람들이 얄미울 것 같다는 말에 그의 반응은 이러했다.
“얼마나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게 귀찮고 버릴 데가 없었으면 여기다 버렸겠어요. 하하.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봐야 마음도 편하고 기분 좋게 일 할 수가 있어요.”
과연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뜻하게 만드나보다. 쉴 새 없이 걸어 다닌 두 시간은 매일같이 새벽에 나와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백하건대 정말 힘들었다.
구민회관으로 돌아가는 길, 아까 분명히 다 치운 것 같은데 또 다시 화단 위, 벤치 위에 음료수 캔 등의 쓰레기들이 보였다. 그는 아침 먹고 시작되는 오전 근무 때 다시 치우면 된다면서, 추우니 빨리 가자고 이끌었다.
사회의 깨끗한 환경 조성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있기에 사람들이 하루를 상쾌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그들은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빛과 소금 같은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최근에 본 뉴스에서, 강서구청의 환경미화원들 앞으로 지급된 설 선물세트를 10년 넘게 중간에서 횡령당한 사실이 보도됐다. 돈으로야 몇 푼 안 되는 선물세트지만, 문제는 그 마음과 태도다.
◇MBN뉴스 캡쳐
같이 걸어가며 보기만 해도 괜스레 얄미웠던 쓰레기들을, 공익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청소했던 그들의 ‘긍정 날개’가 이런 일들로 꺾일까 무서웠다. 하지만 힘 있는 자에게 상처 입은 그 날개를 아물게 해줄 연고는, 힘없는 우리들의 무의식적 일상에서 자전거 바구니나 빈 틈 사이 대신 가까운 쓰레기통을 찾는 배려 속에 숨어있지 않을까.
◇구멍 안을 가득 채운 쓰레기들(사진=바람아시아)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