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긴 했는데, 사실 읽기 전에 겁부터 난다. 몇 페이지 훑어보니 유가족의 사연을 눈물 없이 읽을 순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란 사람이 그들의 한풀이를 제대로 들을 수나 있을까. 저 감당할 수 없을 슬픔을 앞에 두고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아마 눈물 젖은 리뷰를 쓰게 될 것 같다.” 이 책을 받고 블로그에 저런 글을 적었던 게 벌써 3주 전이다. 2월의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이 책을 추천했더니 선정이 되어 자취방 앞에 포장된 채로 놓여있었다. 포장을 뜯고 책을 대충 훑어보았을 뿐인데 제대로 펼쳐 읽기가 무서웠다. 그러곤 시간을 질질 끌며 읽기를 피해왔다.
그 책은 창비에서 출판된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희생학생 유가족 중 부모 열세 명과 인터뷰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란다. 출판사 책 소개에 따르면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다룬 책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유가족들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낸 가족대책위 차원의 공식 인터뷰집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 기록들이 객관적이고 간결한 기억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증언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표지(사진=바람아시아)
어느새 3주가 흘렀다. 리뷰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읽을까, 말까, 어쩔까, 읽으면 책을 끝까지 붙들 수나 있을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이래가지곤 안 되겠다 싶어 책을 들고 오후 1시 즈음 밖으로 나갔다. 좋아하는 카페에 들어갔더니 사람이 많아 커피 한잔을 시켜놓곤 한참을 다른 일만 했다. 그러다가 창밖을 보니 어둑어둑한 게 어느덧 오후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손님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텅텅 빈 카페, 그제야 마음을 굳게 먹고 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런데, 아.... 역시나.
아무래도 울어야 겠어 / 엄마 마음이 답답해 / 미워 / 사람들이 미워 / 우리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 가슴을 쓸어내리고 / 한숨을 쉬어보고 / 나 잘하고 있는거야 / 달래도 보고 / 눈앞에 아른거리는 우리 아들/ 모습에 애써 울지 않으려고 / 밀어내고 있는 나를 알아채는 / 순간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있다 / 뚝뚝 말없이 떨어지는 / 내 눈물소리가 들린다 / 아들~~ 잘 있니? / (...) / 사랑한다 온 마음 다해 사랑해 (18)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는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카카오스토리에 일기를 쓰신다. 위의 글은 그 일기 가운데 한편이다. 이 일기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끝이 찡해졌다. 고요했던 카페에 훌쩍이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와, 이거 첫 사연부터 못 읽겠다 싶었다. 글 따위 사람 감정 드러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한 글자 한 글자에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쥔 채로 인터뷰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나에게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깊이 몰입하여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책을 잠시 덮고는 천정을 쳐다보며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행복한 가정은 그 모습들이 비슷하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이라 하지 않았나, 세월호 참사는 300가구가 넘는 가정에 제각각의 불행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중 13명의 부모님의 생생하고도 가슴 아린 제각각의 불행이 담겨있다. 나로선 마주하거나 감당하기조차 힘든 불행들이다. 책을 덮었다 펼치길 얼마나 반복했던가, IMF이후 홀로 김소연이란 예쁜 딸을 키워왔던 김진철 아버지의 인터뷰에 가서는 더 읽어나갈 수 없었다. 훌쩍임으로 억누르기엔 강한 울컥함이 북받쳐 올랐다.
“소연이는 아빠가 힘들게 일허는지 아니께 열심히 공부를 했시유. (...) 생각허는 게 어른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공부를 잘혀서 장학금을 받았시유. 졸업식 날, 그 돈으로 졸업식에 온 내 친구들을 대접혀주었구만유. (...) 따라가보니 삼겹살집이더라구요. 자기도 좋아허지만 어른들이 좋아하는 거 아니께 그렇게 배려를 헌 거죠. 거기서 17만원 나왔는듸 그걸 장학금으로 계산허더라고유.”(96)
아버지께서 자식을 정말 잘 키우셨는지, 소연이는 어른스러웠다. 수술할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빠, 내가 할게.”라며 선뜻 따라갔다던 중학교 2학년 때의 소연이. 토요일만 되면 아빠와 함께 놀러 다닐 줄 알던, 온 가족이 도란도란 밥 먹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아버지에게 “아빠 걱정하지 마. 내가 커서 다 돌봐줄게. 내가 자식 낳아서 아이들 데리고 오면 되지. 내가 옆에서 아빠 돌보면서 그렇게 해줄게.”라고 말하던 딸. 김진철 아버지에게 소연인 세상 전부였는데, 그 아이를 잃은 것이다. 남겨진 자의 삶이 어떠할지를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아,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야 했단 말인가.
이 비극의 시원을 모르는 한국인이 어디 있겠는가. 2014년 4월 15일, 나쁜 기상 상태로 2시간 30분 출발시각이 지연된 세월호는 오후 9시에 470여 명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배 안에는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이 탑승했고, 적재 한도를 초과하는 차량 180대와 화물 1,157톤도 함께 실려 있었다. 그러다가 16일 오전, 급격한 변침(논란이 여전하다) 등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했다. 세월호가 기욺과 함께 한동안 Tv나 뉴스, 인터넷은 온통 세월호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나 오고 가는 말만 많았지 누구 하나 가라앉는 배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내는 사람이 없었다.
◇사진=바람아시아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인가? 세월호는 단지 ‘사고’로 치부하기엔 어려운, ‘사고’와 ‘사건’의 사이를 넘나드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란 선박이 침몰한 것 자체는 ‘사고’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게 된 맥락, 그리고 ‘사고’이후 책임자들의 안이한 대처로 팽목항을 눈물바다로 만든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사건’이다.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들, 그동안 어찌어찌 잘 드러나지 않았던 더러운 면모들을 낱낱이 들춰냈다. 그런 점에서 이 비극은 경제발전 하나를 바라보고 살아온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과 연관된 인재(人災)였다. 무능한 관료제적 국가, 선장과 선원들의 직업윤리 부재, 해피아의 부정부패,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을 펼친다며 거짓을 보도하고도 여전한 언론들, 나아가 타인을 향한 공감능력의 부재, 물질만능주의, 안전 불감증 등 하나하나 짚기에도 너무나 많은 인과의 사슬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텔레비전에서는 대한민국의 유능한 인력은 이곳에 다 투입된 것처럼 말했어요.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바다에 나가보면 그 넓은 바다가 텅 비어 있는데. 그러니까 부모들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죠. 그런데 그런 건 또 방송에 나가더라고요.”(118)
“처음부터 정부에서 우리를 정직하게 대해줬으면 안 그랬을 거야. 사고였는데 최선을 다해서 구했는데 못 구했다 그러면 우리도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157)
“해경은 시간 끌면서 대충 입으로 때우고, 정부는 언론플레이 하고, 언론은 화면에 계속 똑같은 것만 보여주고 … 뭔가 숨기려고 했던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정황들이 점점 더 보였어요.”(304)
이 책에게 도망 다녔던 3주, 그 3주가 다시 지나면 세월호 참사 1주기다.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이 된서리를 맞아 피지도 못하고 시들고 말라버렸거늘, 제대로 책임진 사람도, 책임질 사람도 없다. 세월호 참사는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어 여전히 ‘왜?’라는 질문으로 끝난다.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다. 3월 21일 오후, 416 가족협의회를 비롯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회원들이 광화문에서 진상규명 촉구 문화제를 열었다. 이에 혹자들은 이제 그만들 좀 하라고 말한다. 책임자도 처벌받았고, 원인도 다 판명 났고, 이제 끝난 게 아니냐면서. 어느 혹자들은 유가족들이 돈을 바라고, 특례를 바라고 계속 늘어진다고 비난한다.
그런 사람들, 이 책을 꼭 먼저 읽어보고 무슨 이야길 해도 했으면 좋겠다.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없다곤 못할, 그래서 기사도 이것저것 찾아보고 했던 나도 이 책을 보니 세월호 참사에 관해 정말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작년에 세월호 관련 기사와 영상을 여럿 보았지만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닭똥 같이 떨어지며 책을 적셨던 내 눈물, 이 눈물이 그동안의 내 무지를 방증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유가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부디 이 책을 훑기만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유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우선 이 책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건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진실이란 비자발적으로, 감성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해서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주어진 프레임의 재인(再認)이므로, 사실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유는 정치권에 휘둘리고 언론에 의해 휘둘린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허상이다. 신자유주의시대에 자유는 착취의 대상이다.
자본권력은 이미 많은 사람의 신체에 침투해, 경쟁심이 투철하여 타인을 향한 배려가 부족한 주체들을 길러낸다. 자본을 향한 효율성과 경쟁력을 추종하도록 길러진 주체. 이 주체가 자유롭다 느끼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 모든 것은 자본의 자유를 위해 봉사할 뿐, 그 자신은 자본에 종속된 노예로 전락한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자본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지만, 동시에 그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충격’을 가해 사유하게끔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이 1주기가 다되어가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외치는 이유는, 개인적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라 진상규명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소중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다. 하늘나라에 간 자식들 앞에서 무슨 이익을 바란다고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겠는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달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가 블로그에 특조위 간담회에서 발표했던 글을 올렸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진상규명의 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
http://blog.naver.com/suhyeon1053/220263151957) 1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이렇게 의문이 제기되는 사안이 많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의 구체적 정황을 덮으려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게 까발려지는 순간 자신의 입지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
“저희에게 기소권까지 다 줘도 진상규명은 안된다고 봐요. 이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는. 대통령이 ‘본인 스스로까지 조사해서 문제가 생기면 이 정권을 내놓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진상규명이 되겠지만, 대통령이 이처럼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해도, 국회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100퍼센트 인정해 줘갖고 제가 모든 것을 요구하는 자료를 싹 다 내놓고 묻는 말에 그대로 대답했다고 하더라도 안 밝혀집니다. 왜냐? 정권이, 이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는 순간 이 정권이 무너집니다.”(188)
이 책을 읽으니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세월호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