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일까지 마무리됐어야 할 3월분 임금 지급은 24일까지 유예됐다. 그렇지만 돌파구는 나오지 않았고, 기업들은 남·북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
정부 지침대로 ‘월 최저임금 70.35달러’라는 기존 기준으로 계산한 임금을 지급한 기업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 기업들은 북측이 정한 최저임금(74달러)을 기준으로 한 임금과 실제 지급된 임금의 차액에 대해서는 ‘향후 연체료를 지급하겠다’고 확인하는 담보서를 북측에 제출했다. 기업들이 제시한 일종의 절충안이지만, ‘정부 지침을 어겼다’고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해 많은 기업들이 주저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개성공단 노동규정 중 13개 항목을 개정한 뒤 지난 2월 이 중 2개 항을 적용해 3월부터 북측 노동자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5.18%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에 남측이 ‘기업들은 북측의 일방적인 인상에 응하지 말고 기존대로 지급하라’고 맞서며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단기적으론 '경제적 접근' 강조돼
김근식 경남대 정외과 교수는 남측 당국이 ‘북한이 약속을 어겼다. 남북의 합의 정신을 깼다’는 식으로 말하며 정치적 기싸움을 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노사가 단체협약을 맺으려고 줄다리기하듯, 개성공단 임금인상 갈등도 경제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며 “북측의 임금인상 요구가 필요하고 타당하다면 합리적인 선에서 인상해 줄 수도 있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상한선 5%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중국이나 러시아로 인력을 활발히 내보내면서 개성공단의 임금 수준이 상당히 낮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된 이상 ‘5% 상한선’을 고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생산성에 걸맞은 임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언젠가는 전환해야 한다”며 5% 상한선을 고집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현재의 교착을 타개하기 위한 몇 가지 기술적인 제안을 내놨다. 우선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개성 현지에서 제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측의 입장에서 남측 당국으로 간주하는 관리위원회가 현지에서 북측을 접촉해 설득하고 설명하는 노력을 부지런히 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임 교수는 입주기업들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북측이 각개격파 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기업들이 난처한 입장이어서 그냥 지급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며 “그렇게 하면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기업들이 공동전선을 펴 북측을 압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북의 정치·군사적 신뢰가 없는 시절의 개성공단은 늘 위태롭다. 지난 2013년 9월, 160여일 동안의 가동 중단 사태가 끝난 후 북한 노동자들이 공단에 돌아와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 ⓒ뉴시스
◇ "근본적으로 필요한 건 남북관계 개선"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임금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중·단기적 해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북관계 전반을 개선하는 것이다.
임 교수는 “개성공단은 남북의 정치·군사적 관계와 밀접히 연동돼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남북이 긴밀히 협의해 해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은 공단이 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부유물처럼 돼버렸다”고 묘사했다. 그는 “결국 당국간 신뢰 수준을 다시 높여 공단 발전과 관련된 새로운 컨센서스와 규범을 만들어 엄격히 준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3년 반 가량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지낸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는 어두운 진단을 내렸다. 남북 당국관계의 정상화와 정치·군사적 신뢰 조치가 없으면 개성공단은 한 발짝도 못 나갈 지경에 와 있다는 것이다. 김진향 교수는 “(2010년 천안함 사건 후 내려진 대북 제재인) 5·25 조치는 남북간의 대립을 정책적으로 제도화한 것인데, 그 상황이 바뀔 기미가 없자 북측은 노동규정 개정이라는 ‘법적인 제도화’를 해버린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 교수는 “과거 남북의 협력 사업이었던 개성공단이 이제는 북측의 공단이 된 것”이라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정령을 바꿔 놓았는데(노동규정 개정) 그걸 다시 바꾸라고 하면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북측의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북 전단 살포를 수수방관한다거나,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공개 발언하는 등 대북 적대정책이 계속되는 한 개성공단의 비정상적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준호 기자(jhwang741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