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위주의 체제 언제 끝날 것인가

입력 : 2015-06-03 오전 6:00:00
최강욱 변호사
2008. 10. 31. 제정된 대통령령에 따라 신임 검사는 선서를 한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 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현실에서 이 선서는 이미 의미 없는 ‘찌라시’로 전락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검사 선서를 패러디한 글들이 종종 눈에 띈다.
 
“불의의 어둠을 불러내는 비겁한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짓밟는 차가운 검사, 오로지 거짓만을 수용하는 편파적 검사, 스스로에게 더 관대한 틀린 검사”라는 비아냥이 가득하다. 
 
최근 다시 그 검찰과 법원이 저지른 오욕의 역사가 확정되었다. 유서대필 조작사건 말이다. 권력기관의 조작에 희생된 24년의 멍에는 강기훈에게 말기 암으로 남았지만,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그에게 친구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그 더러운 누명을 씌우고 헌법재판소장으로, 대법관으로, 검사장으로 승승장구한 자들은 전혀 사과할 기미가 없다. 
 
강기훈 사건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남기춘은 현역 시절엔 강직한 특수통 검사로서의 기개를 칭송 받은 적도 있었다. 그는 무죄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사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한 판결도 지금의 잣대로 하면 결론이 달라지는 게 많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다는 임철은 또 "검찰은 수사를 하는 기관이지 판단을 하는 기관은 아니다. 당시 1·2·3심이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그런 걸 밝혀내지 못했다면 그건 오히려 법원 측에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선시대 아니라 어느 시절, 어느 나라에도 증거도 없이 억지 누명을 씌운 수사를 불가피한 것으로 본 적은 없다. 결국 이들의 해명은 당시 검찰은 판단능력이 없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대로 수사해서 시대상황에 부응하는 결론을 이끌었다며 자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법원의 잘못은 분명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검찰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는 재래의 수법도 이 사건에선 결코 통할 수 없다. ‘최후의 보루’로서 진실과 인권을 지켜내기는커녕, 거짓과 불의에 동조하여 유죄 판결을 한 것도 모자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재심을 질질 끌며 강기훈의 생명이 타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추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고도 아무런 사과가 없다. 선고 현장에서도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건조한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끝내려고만 했다. 
 
2008. 9. 26. 사법 60주년 기념식을 빌어 당시 대법원장 이용훈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하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재심절차가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 
 
강기훈 씨는 지난 2008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서울고법은 “재심을 진행해서 다시 무죄인지 아닌지를 따져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가 모였다는 검찰은 곧바로 146쪽에 이르는 즉시항고 이유서를 써서 대법원에 제출하며 불복했다.
 
대법원은 4년이나 지난 2012. 10. 19.에서야 검찰의 항고를 기각하며 재심개시 결정을 확정했다. 대법원 국정감사를 나흘 앞둔, 그것도 주말로 넘어가는 금요일 저녁에 갑작스레 발표한 것이다. 그것도 재심 개시 사유 가운데 물적 증거는 부정하고, 일부 허위 증언만을 인정해 재심을 받아들인 타협적인 결정이었다. 그러고도 3년이 더 흘러서야 무죄가 확정되었다. 최근 그 이유를 물으려 찾아간 방송사 카메라는 4년간 결정을 미룬 당시 주심 대법관에 의해 부서졌다.
 
사법부의 반성은 이토록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된” 재심으로 그 진의가 드러났다. 재심을 통해 과거의 억지가 뒤집힌 사건에서, 법원이 직접 사과하며 반성한 적은 단 세 번뿐이다. 그 사이 24초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강기훈의 억울함이 확인되는 데에는 24년이 흘렀다. 결국 아직도 우리는 “장기화된 권위주의 체제”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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