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50주년 되는 날이다. 1965년 한·일 양국간 인적교류는 2만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매년 5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1965년 무역량은 2억달러였지만, 2014년 860억달러에 달했다. 인적교류는 무려 250배, 물적교류는 430배 증가했다. 정부 재정 규모도 한국이 376조원, 일본은 96조엔으로 2.3배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둘밖에 없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한다. 지난 50년간 엄청난 국력 차이를 극복하고 수평적 관계에 접어들었다.
정부가 받은 대일 청구권 자금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소양강댐, 지하철 1호선에 투자되면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한국에는 자동차, 반도체, 전자제품으로 일본과 경쟁할 정도의 글로벌 기업이 상당하다. 더구나 한국은 남북대결 상태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숙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일본 역시 전후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보장된 선진국가로 평화헌법을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교 50주년을 맞은 현재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위안부 해법, 강제징용 소송,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집단적 자위권 등을 둘러싸고 심하게 꼬여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양국 정상은 무려 여덟번 만났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임기 절반이 되도록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한국은 대일 ‘원칙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3가지 조건을 들었는데▲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강제징용 사실을 명기할 것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해법을 제시할 것 ▲8월 ‘아베 담화’에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들어갈 것을 의미하고 있다.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가능성은 낮다. 한국과 일본은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고 서로 손실이 너무 크다. 일본 내 혐한론은 도를 넘어섰다. 281명의 일본 지식인 성명이나, 아베 담화에 맞불을 놓을 ‘민중담화’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와 방역 허점은 일본의 언론을 매일 장식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양국 정상이 만나야 한다.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한국민의 비율도 7할이 넘는다. 일본은 아베 총리가 나서서 한일관계를 풀어야 한다. 일본의 재계와 언론은 아베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유네스코 등재는 양국의 타협이 가능하다. 강제징용 사실을 명기하고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를 얻어내면 된다. 위안부 해법은 결단의 문제이다. 일본 민주당 집권 시절에 나온 안대로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피해자를 방문해 위로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일본의 제안을 수용하고 임기 중 위안부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8월 아베 담화에 침략전쟁과 식민통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높지 않다. 두루뭉술한 반성으로 그칠 수도 있다. 그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유감을 표명하되 지나친 비난은 신중히 해야 한다. 그리고 11월까지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자. 한국이 주최국이니 청와대나 제주도가 좋다. 동시에 한·일 정상회담을 열면 된다. 한일관계를 회복하면 한미동맹은 더욱 공고해진다.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한국은 상실한 외교 주도권을 다시 쥐게 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2015년 여름, 동북아 정세는 19세기 유럽을 방불케 한다. 냉전도 끝났고 필요하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 본격적인 외교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의 핵개발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개발, 일본의 재무장과 헌법개정, 중·일 갈등과 군비경쟁이 한창이다. 각자도생하면서 국력증강에 매진했던, 비밀동맹과 군사밀약이 횡행하던 19세기 유럽판 국제정치가 동북아에서 재현되고 있다. 도덕외교 따위는 설자리가 없던 시절이다.
한국 외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대북·대일 원칙외교를 버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인적 감각과 유연성을 겸비해야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