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이 15일 정식 서명되면서 국회 비준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헌법 60조는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나, 국가·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법령 개정 등이 필요한 조약에 대해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이 조항에 따라 비준을 받는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원자력협정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개정 전의 한·미원자력협정을 비롯해 한국이 체결한 29개 원전협정 가운데 국회 비준을 거친 협정은 없다’는 이유다. 최근 법제처는 ‘국회 비준이 필요 없다’는 유권해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법제처의 의견을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비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로 시민단체들 쪽에서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이번 협정을 계기로 앞으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힘을 더 받게 될 것이고, 연구 수준의 관심을 넘어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며 “국회에서 이렇게 중요한 국가간 협정을 논의하고 비준하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처장은 “비준 과정에서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이 왜 문제인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정의당이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김제남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미국처럼 의회 비준을 받지 않고 행정부에 속한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라 비준 여부가 결정되어선 안된다”며 “국가 안보와 환경, 국민들의 안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검증하기 위해서도 국회 보고와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4월 협정 가서명 당시 ‘국민적 동의’와 ‘국회 보고’를 언급했지만 ‘국회 비준’을 명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번 정식 서명 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의원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의회 비준 절차가 시작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어니스트 모니즈 미 에너지부 장관이 15일 서명한 협정문은 핵확산평가보고서(NPAS)와 함께 미 의회로 넘어갔다. 상·하원이 심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90일 연속회기 동안 상·하원 공동의 ‘협정 불승인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의회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개정된 한·미원자력협정 15일 정식으로 서명됐다. 사진은 지난 4월 가서명 당시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협정문을 교환하는 장면.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