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형 의약품 기술력 하나로 글로벌 넘버원 꿈꾼다

(인터뷰) 장석훈 씨엘팜 대표
필름 제단 후 분사 기술 '세계 유일', 8개 특허 등록·4개 추가 추진
"브라질 EBX그룹 2억8천만달러 투자…UN도 300억원 연구 자금 지원"

입력 : 2015-06-24 오전 8:49:20
셀로판과 같은 얇은 막 형태로 혀에서 녹여 먹는 필름형 의약품이 인기다. 정제(알약)와 효과는 같으면서 물 없이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다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있다. 특히 발기부전치료제에 사용되면서 필름형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다. 필름형 발기부전치료제(80억원) 등 의약품과 건기식을 합치면 필름형 시장은 200억원대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시장에 뛰어드는 제약사도 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10여개 업체에 이른다. 5개 업체는 제조설비를 만들고 있다. 국내에는 3개 업체가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발기부전치료제에서 나아가 감기약, 멀미약, 치매치료제 등을 개발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토종 강소제약사 씨엘팜 역시 이들과 경쟁한다. 현재 특화된 기술력으로 연이어 해외 계약을 성사시키며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만성 적자에 시달려도 "R&D만이 살길"이라는 장석훈 씨엘팜 대표(62)의 뚝심 있는 행보가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뉴스토마토>는 장 대표를 만나 회사의 발자취와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씨엘팜 대표이사'. 2006년 명함을 새긴 지 올해로 만 10년째다. 미국 생활까지 포함하면 15년간 필름형 의약품에 인생을 걸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필름형 의약품 생산기업 대표가 됐지만 과거 그는 고생과 고난이 연속인 삶을 살았다. 단 하나 '남들이지 가지 않는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를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장석훈 대표.사진/씨엘팜
장석훈 대표는 의약품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의류사업을 했었다. 전세계 54개국에서 의류 원단 수출입을 하던 그는 2000년 제2의 인생을 선택했다. 미국 화장품 회사를 인수하면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사업 초기, 주름개선 보톡스 화장품이 히트 상품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사업 1년만에 다국적 제약사 엘러간과 소송에 휘말리며 휘청거렸다. 이것이 필름형 의약품 시장에 뛰어들게 된 우연한 계기로 작용했다.
 
의류업과 화장품에 이은 3번째 인생이 시작됐다. 
 
"소송을 담당하던 변호사가 필름형 구강청결제를 먹더라고요. 당시에는 필름형 제품이 흔하지 않아 신기했죠. 사업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습니다. 입안에서 빠르게 녹더라고요. 이걸 의약품으로 만들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였다. 당시는 미국에서 비아그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였다. 비아그라를 필름형으로 개발하면 복용편의성을 개선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당시 업계에는 필름형 의약품은 전무했다. 그야말로 '블루오션' 시장을 발견한 셈이다. 장 대표는 화장품 사업을 접고 의약품 사업에 '올인'했다. 화장품 공장 시설도 필름형 의약품 시설로 바꿨다. 
 
"15년 전에는 필름형 의약품 제조소가 2~3곳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에 넘어가 설비를 구입한 후 2003년에 미국에 크리에이티브 라이프(Creative Life)라는 업체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필름형 의약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장 대표는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씨엘팜을 설립했다. 그때가 2006년이다. 의약품 사업에 밑바탕이 없었던 탓에 사업은 늘 좌충우돌, 풍전등화였다. 
 
"애로가 많았습니다. 미국에서만 지내느라 한국 사정에 밝지 못했거든요. 처음에는 성수동에 공장을 만들었지만 국내 의약품 공장설비 규정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의약품 사업도 처음이어서 설비를 개발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만성적자에 시달렸죠."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도 문제였다. 처음에 씨엘팜의 필름형 의약품 기술은 필름에 약물을 바른 뒤 오려내는 방식이었다. 양 옆을 잘라내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수율이 좋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필름형 의약품의 수율은 50~60%에 불과하다. 10개 제품을 만들면 절반 정도는 버려야 했다. 
 
"기존 시설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비 업그레이드와 기술 개발을 계속했죠. 우리 같은 중소사는 차별화하지 않은 기술만으로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5년 동안 200억원을 R&D에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독자적인 기술을 갖추게 됐죠."
 
2010년 충청남도 아산시에 신공장과 기술연구소를 신축하면서 씨엘팜은 완전히 탈바꿈했다. 발상을 전환했다. 약물을 바른 뒤 필름을 자르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거꾸로 한장씩 잘라진 필름에 약물을 하나씩 분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기술이다. 이 기술을 완전히 개발하는 데만 10여년이 걸렸다. 덕분에 수율은 필름형 의약품 최고 수준인 90%로 끌어올렸다. 의약품 원료의 정량 도포도 가능해졌다.
 
브라질 EBX그룹의 2억8천만달러를 투자에 결정적 역할을 한 씨엘팜 공장의 설비. 사진/씨엘팜
이 기술은 특허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2009년에 '식용필름발명특허'를 시작으로 필름형 의약품의 제조설비에 대한 특허 8개를 줄줄이 등록했으며, 현재 4개의 특허를 추가 등재할 예정이다. 2011년에는 KGMP(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를 인정받았고, 같은 해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약품 제조업 허가를 취득했다.
 
장 대표가 만든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광동제약의 발기부전치료제 '이그니스'다. 이그니스는 비아그라 성분을 필름형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올 초에는 유한양행, 종근당, 미래제약, 동구바이오제약, 동광제약과 발기부전치료제 '시알리스'를 필름형으로 개발한 약물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점차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브라질 최대 회사 중 하나인 EBX그룹이 장 대표가 만든 제조시설에 관심을 보였다. 바티스타 EBX 회장은 2012년 포브스지가 뽑은 세계 7대 부자에도 선정된 바 있다. 
 
"바티스타 EBX 회장이 우연히 씨엘팜의 필름제품을 접했나 봅니다. 바티스타 회장이 큰 관심을 보여 씨엘팜의 공장을 직접 방문해 그 자리에서 파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5분 안에 제품 제조에서부터 포장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최첨단 공장설비를 보고 사업성이 높다고 본 것입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25%가 정제를 섭취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와 계약을 체결한 EBX는 중남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의약품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EBX는 내년 초까지 2만~3만평 규모의 공장을 만들기 위해 2억8000만달러(3000억원)을 투자한다. 씨엘팜은 30%의 지분을 받는다.
 
장 대표는 EBX의 소개로 UN과도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저개발국가에 보낼 필수의약품을 위해서다. 말라리아약을 필름형 의약품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영유아의 말라리아 사망률은 9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영유아에게 말라리아 정제를 먹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개발국가에서는 물이 오염돼 정제를 아동에게 먹이기 어렵거나 의사 수도 부족해 주사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말라리아약을 필름형으로 공급하는 사업을 위해 UN 측이 전 세계 필름형 의약품 제조사를 전부 돌아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 결과 UN이 EBX와 씨엘팜에 300억원의 연구자금 지원을 약속했다고 장 대표는 전했다. UN이 전 세계에 공급하는 말라리아약 시장은 한해 2조원 정도다. 6~7개 제품이 있으나, 모두 정제다. 장 대표는 필름형 말라리야약에 대한 해외임상에 돌입해 상용화하려면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 대표는 중국과 일본 시장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에 공장을 설립해 2년 내 5개 제품을 조속히 출시한다는 목표다. 일본 도카이캅셀과는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몽골, 베트남, 카자흐스탄, 러시아, 마카오에는 완제품을 수출한다. 1장당 1달러로 계산하면 5개국에 총 2300만달러(255억원) 규모다. 장 대표는 각 국가로부터 2억~3억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R&D 투자가 올해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 성과가 가시화됐기 때문에 2~3년 안에 해외 사업의 수익금이 유입됩니다. 올해는 연 매출 100억원 돌파를 예상하고 있고요, 3년 내에는 중견제약사로 발돋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중소제약사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앞으로는 해외진출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문제는 R&D역량이 부족한 중소제약사들인데요, 이럴수록 오히려 R&D에 집중해야 합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남들이 하지 않는 확실한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난관이 펼쳐져도 슬기롭게 뚝심 있게 매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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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