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암살' 최동훈 감독 "영화라는 전쟁터, 즐기며 살고 싶다"

입력 : 2015-07-23 오후 5:44:06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입봉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전우치>, <도둑들>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히트작을 내놓으며 국내 최고 흥행 감독으로 평가받는 최동훈 감독이 신작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1930년대 격동기를 그려낸 <암살>이다. 독립군과 변절자, 방관자가 함께 하던 시대상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를 선보여온 그가 강렬한 시대적 메시지를 품은 <암살>을 내놨다. <암살>은 개봉 전부터 40%가 넘는 예매율을 기록하며 최동훈 감독의 흥행력을 다시 한번 입증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과거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인지 전작들보다 무겁다. '과연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9년이 걸렸다는 최동훈 감독은 "<타짜>가 끝나고 고민하다가 잘 안풀렸고, 묵혀두다가 지금까지 왔다"며 "최동훈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암살>은 진작부터 꿈꿔왔던 이야기"라고 말했다.
 
입봉작 이후 모든 영화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해온 감독이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도 있다. 최동훈 감독은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앞으로도 영화라는 전쟁터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 감독과의 일문일답.
 
 
<암살> 최동훈 감독. 사진/쇼박스
  
-개인적으로 팬이다.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났다. 팬이라는 기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밑밥'일 거라 생각한다. 분명히 이런 식으로 접근해놓고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을까 경계심이 든다. 그래도 좋다고 해주니 고맙긴 하다.
 
-왜 <암살>이었고, 의열단이었나. 그동안은 사적인 복수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 안에 인간의 도리와 같은 메시지가 있긴 했지만 거대서사를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암살>은 다르다. 묵직하고 강하다.
 
▲그것 때문에 9년이나 걸렸다. 꼭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원래 내 스타일대로 찍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암살>은 좀 더 멋있게 만들고 싶었다. 긴 시절을 다루는 이야기니까.
 
<타짜>를 끝내고 고민을 하던 중에 잘 안풀렸다. 그래서 '묵혀두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쥐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우치>를 찍고 <도둑들>까지 마무리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더라.
 
-2012년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은 건가.
 
▲그런거다. 목덜미를 잡든 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다. 써놨던 시나리오도 폐기했으니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 때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무언가 끌어 오르는 게 있지 않나.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대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것을 관객들도 느꼈으면 했다.
 
템포조절을 많이 했다. 막 달리다가도 서고, 또 막 달리다가 잠깐 쉬고, 정중동의 느낌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톤을 잡는데 어려웠다. 마냥 무거워서도 안 된다. 영화는 재밌어야 하는 콘텐츠니까. 영화가 기억에 남기 보다는 캐릭터가 더 기억에 남았으면 했다. 관객들이 '저 시대에는 저런 사람들이 있었구나'라는 호기심을 갖길 원했다.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신작 <암살> 포스터. 사진/쇼박스
 
-사실 1930년대 영화가 거의 없다. 쉽게 말해 망하기 쉬운 배경이라고도 한다.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최동훈 감독의 이름값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대한 관심은 분명 있는데, 사람들이 안 찍는다. 조선은 많이 만들어지는데, 일제강점기 영화는 별로 없다. 오히려 60년대 영화들 중에 '임시정부와 김구선생', '청일전쟁과 민비' 이런 영화들이 많다. 그래서 참고할만한 영화가 없었다. 그냥 맨땅에 헤딩을 했다.
 
-재밌는 소재는 많은 시기인데 영화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tvN에서 곽정환 PD가 <빠스껫 볼>을 만들기는 했다. 흥행에는 실패했다. 왜 흥행에 실패했으며, 왜 영화 감독들이 이 시대를 다루는 것을 꺼린다고 생각하나.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시대를 떠올리기 싫은 거다. 앞으로 이 영화를 통해 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더 늘어났으면 한다.
 
김두한의 소재도 있고, 의열단도 있고, 또 다른 독립군도 많다. 조선의 협객이 일본 깡패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로도 이 시대를 다루는 영화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김원봉 역에 조승우를 썼다. 실존 인물이 김구와 김원봉 두 명이 나오는데, 김원봉에 더 포커스를 맞춘 느낌이다. 김원봉에 대해서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던데.
 
▲조사를 많이 했다. 김원봉은 의지가 남다른 사람이고 정말 잘생겼었다. 그래서 여자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도 순애보도 있다. 부인 박차정 여사가 중국에서 죽었는데, 김원봉이 한국에 올 때 박차정 여사의 옷을 가슴에 품고 왔다.
 
부산에서 <암살> 시나리오를 썼다. 차를 타고 가는데 박차정 여사 생가가 있더라. 그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과거에 있었던 사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사실이 있다는.
 
<암살> 최동훈 감독. 사진/쇼박스
 
-시나리오를 잘 쓰는 감독으로 통한다. 대사들도 톡톡 튀고, 스토리 라인도 훌륭하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뭔가.
 
▲글을 못 쓰니까 잘 쓸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국문학과 출신인데 시나리오 말고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기존 선배 감독들의 시나리오를 많이 봤다. 이명세 선배나 임상수 선배 시나리오는 읽기만 해도 재밌다. 그 심플한 대사에서 감탄한다.
 
나는 평범하기 때문에 될 때까지 고친다. 휙 쓰고 한 번에 '탁' 하고 내놓은 적이 없다. 대충 써놓고 고치고 또 고친다.
 
-<타짜>의 대사는 아직도 유머로 쓰인다. 거의 모든 대사가 어록이다.
 
▲가끔은 나도 당황스럽다. 10년이 다 되가는데 유머로 쓰이고 있다. 왜 그럴까. 대사가 맛있어서 그런가.
 
그런 면에서는 감독보다는 배우의 역할이 더 크다. 대사도 배우가 맛있게 뱉어야 한다. <범죄의 재구성> 때인데 대사가 정말 별로였다. 걱정하고 있었는데, 백윤식 선배가 뱉는 순간 대사가 정말 맛깔스러워지더라. 배우가 더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암살>에서는 톡톡 튀는 대사가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시대를 담아야하기 때문이었나.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그 제한을 안고 가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고리타분하면 안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현대적인 농담을 할 수도 없었다. 튀는 대사는 이 영화가 어울리지 않았다. 잠깐 억제했다.
 
-변절이 영화의 화두다. 변절자를 중심에 세운 작품은 <암살>이 처음인 것 같다.
 
▲변절이란 건 우리의 모습 속에 녹아있는 부분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했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숫자다. 그만큼 변절자도 많았다.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어려운 문제다.
 
격동기였던 것 같다. 변절한 사람과 방관자, 신념을 가진 독립군 등 각각의 표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암살>이 최동훈 감독 영화같지 않은 데는 카메라 워크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최영환 촬영감독과 네 작품을 했는데, 이번에는 김우영 감독과 함께 했다. 일정상의 문제였나.
 
▲일정 때문이었다. <암살> 촬영을 앞두고 뭐하냐고 물어보니까 <베테랑>을 한다고 하더라. 류승완 감독과 나는 스타일이 비슷해서 최영환 감독을 빼앗고 빼앗기는 사이다. <베테랑> 때문에 못하게 됐고, 그 때 김우영 촬영 감독을 추천하더라.
 
김 감독은 수줍은 사람이라 배우들과 대화도 많이 하지 않는다. 최 감독이 표범 같이 나이스하고 빠른 타입이라면 김 감독은 힘세고 여유 있는 사자와 같다. 사람이 다 개성이 있다. 그걸 배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는 느리게 찍고 싶었다. 누가 이 영화의 카메라를 잡았든 같은 그림이 나왔을 거다.
 
-애국심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았다. <명량>과 <연평해전>의 흥행 요소 중 하나가 애국이었는데 <암살>은 애국 키워드를 숨겨둔 느낌이다.
 
▲2년 반 전에 찍은 영화다. <명량>이 나오기 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방식이 더 좋았다.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내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묘한 감격 같은 게 있었다. 아마 관객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극중 인물을 울릴 수도 있다. 그러면 감정이 더 커질 거다. 그런데 '안옥윤이 울까'라고 생각해보면 안 울 것 같았다. 그저 그 시대의 인물만 그리고 싶었다.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전지현. 사진/뉴시스
 
-전지현과 또 한 번 함께 했고, 전면에 내세웠다. 전지현은 '최동훈의 뮤즈'가 되겠다고 한다. <도둑들> 때 이미 전지현과 <암살>에서 함께 하기로 약속했었나.
 
▲전지현은 본능이 뛰어난 배우다. <도둑들> 때 툭툭 튀어나오는 느낌에 푹 빠졌었다. 그 때 다른 걸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쁜 거에는 관심도 없고 독립만 생각하는 심지가 굳은 여자를 시켜보고 싶었다. 전지현 같은 배우가 나의 뮤즈가 되고 싶다니 영광이다.
 
캐스팅과 관련해서 배우와 먼저 얘기를 나눌 경우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나리오다. 시나리오가 안 좋으면 거절한다. 워낙 많이 거절 당해봐서 잘 안다. 그게 배우의 권리이기도 하다. 전지현이 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정재는 역대 최고의 연기를 펼치더라. <도둑들> 때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배우가 완전히 그 캐릭터가 돼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두 번 느꼈는데, 김윤석이 아귀를 했을 때와 이정재가 염석진 역을 맡았을 때가 그 경우다. 옷을 갖춰입고 나타났는데 이정재는 염석진이었다. 감독으로서는 정말 행복하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정우도 멋지다. 하정우를 가장 멋있게 만든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정우를 볼 때마다 '멋있게 생겨서 친구하고 싶은 남자'라는 생각을 했다. 친근하면서 우아하다. 웃기기도 한데 하정우가 이를 악물면 어떤 표정이 나올지 궁금했다. 하와이피스톨을 그려내면서 하정우가 떠올랐다. '나도 이제 하정우와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설렜었다.
 
-최덕문도 눈에 띈다. <도둑들> 때 김수현의 입술을 뺏어간 중국배우라 생각했는데, 한국배우였다. 왠지 제2의 김윤석이 될 것 같은데.
 
▲연극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엄청난 열정과 호기심이 있는 배우다. <도둑들>, <암살>에서 그런 기운을 주더라. 그러면 그림이 잘 나올 수 밖에 없다. 다음 작품에서 더 중요하게 쓸 수도 있다.
 
-한 번만 작품하는 배우가 별로 없다. 한 번만 한 배우는 박신양, 강동원, 임수정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강동원이랑 또 해야되는데, 언제 하죠, 하하. 이제 슬슬 나의 패턴이 읽혀지는 것 같다. 배우는 아티스트다. 두 번은 해야 이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다. 한 번 하면 잘 모른다. 같이 작품을 하면서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지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러면 배우들은 '그럼 그렇게 좀 써봐' 이런다.
 
-흥행, 작품성, 시나리오,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을 이룬듯 한데 또 다른 목표가 있나.
 
▲영화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아마 그냥 영화를 계속 할 것 같기는 하다. 해보고 싶은 건 정말 많다. 근데 앞으로는 욕먹을 일만 남아서 걱정이다.
 
딱히 목표는 없다. 영화를 찍는다는 건 2년 동안 집중하는 일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을 주는 일이다. 그걸 즐겁게 하고 싶다. 고통을 버텨내면서 즐거워하는 느낌을 계속 받고 싶다. 영화 찍을 때 재미가 없어지면 안 되니까. 영화라는 전쟁터를 즐기면서 살고 싶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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