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판결로 촉발된 선거구 재획정 등 정치개혁 문제가 국회의원정수 확대라는 휘발성 강한 주제와 맞물리며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의원정수 문제가 급부상한 결정적 계기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5차 혁신안에 '권역별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 도입 방안이 담기면서부터다. 혁신위는 선거제도 개혁의 방점을 '비례성 강화'에 찍고 올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제안과 함께 제시한 지역구 의원 대 비례의원 비율 '2:1'을 차용, 현재 지역구 의원 246명에 맞춰 비례의원을 123명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혁신위 안에 대해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세비삭감 전제, 의원정수 390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새누리당은 야당발 의원정수 확대 논의의 불똥이 튈까 곧바로 '반개혁적 발상'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최대한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그러나 의원정수 문제에 대해 가부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국회 정개특위 내에는 이미 헌재 판결에 따라 확대 불가피한 의석이 '10여 개'에 이른다는 데 의견이 모인 상태다. 이는 향후 선거구 통폐합 기준 논의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 의원정수 문제의 대전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즉, 여당은 지역구 의석 10여 개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원정수 확대는 불가능하니 비례의원을 줄이자는 주장인 반면 같은 상황에서 야당은 비례의원은 절대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다수인 상황이다. 특히 올해 3월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회는 조만간 정개특위에 제출할 보고서에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20대 총선에서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비례의원을 축소해서는 안 되며 중장기적으로는 총의석수가 확대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3년 김도종 명지대·김형준 국민대 교수가 총인구, GDP(국내총생산) 규모, 중앙정부 예산 및 중앙공무원 수 등을 기준으로 OECD 국가와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의 적정 의원정수는 약 330명에서 360명 규모인 것으로 조사된 적도 있다.
국회의원의 대표성 강화와 국가 규모 등에 따른 의원정수 확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7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 세비 삭감을 전제해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전체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7.6%로 나와 국민 10명 중 6명이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방증한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이에 "장기적으로 의원정수를 늘릴 필요는 있지만 새누리당은 의원정수를 못 늘리니 비례를 줄이자고 하고 새정치연합도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비례를 늘리자고 한다. 결국 정치인들은 하나도 손해 안 본다는 것으로 명분이 없다"고 비판했다.
의원정수 논쟁을 이끌고 있는 또 한 축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5~6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인구비례에 따라 총의석수를 배분하는 것으로 현재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구조와 달리 정당 지지도만큼의 의석수를 확보해 사표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누리당의 호남권 비례의원, 새정치연합의 영남권 비례의원 탄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선관위는 지난 2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며 총의석수를 300명으로 고정하고 권역별 지역구와 비례의원 비율을 2:1(±5%)로 맞춰 지역구와 비례의원 수를 현재의 246 대 54에서 200 대 100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이를 반길 리 없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의원정수 문제가 논란이 되자 "앞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논의할 때 의원정수도 함께 논의하는 게 맞지 (의원정수를) 먼저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의 정수를 지키면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결정적으로 의원정수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현재 비례의석 수(54석)로 권역을 나눠 시뮬레이션을 하면 한 3개 권역의 할당 의석은 6~8개밖에 안 된다. 지금 남녀교호순번제를 하고 있는데 6명에서 1, 3, 5번 쓰고 나면 2, 4, 6번으로 양성·직능·소수자 대표성 등을 포함해야 한다. 최소한의 규모가 안 된다"고 평가했다.
*휴대전화 50%와 유선전화 50% 임의전화걸기(RDD) 자동응답방식으로 진행. 응답률은 5.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 포인트.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지난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담은 5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