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지난 5월20일, 첫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환자가 발생한 후 한 달 반 동안 대한민국은 메르스 공포로 인해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신문 지상은 메르스 관련 보도로 채워졌고, 최대 1천개가 넘는 학교가 휴교조치를 해야 했으며, 많은 국민들이 집밖 외출을 삼가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중병을 앓았다. 사태는 6월 말이 되어서야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메르스 감염환자인 186번 환자가 진단된 7월4일 이후에는 관련 보도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잠잠해졌다. 그리고 7월28일, 정부는 공식적으로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WHO는 마지막 환자가 완쾌된 후 28일이 경과된 후에 종식선언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사회 혼란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부터의 탈출이 절실했던 정부는 황교안 총리가 직접 나서 메르스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음을 선포하고 모든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가 줄 것을 주문했다. 총리는 뒤늦게 “많은 불편과 불안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고, “초기에 확실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 등 대처과정의 문제점과 원인을 철저히 밝혀, 그에 따른 조치가 뒤따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메르스는 이대로 마무리되는 듯하다. 과연 이대로 끝내도 괜찮은가.
뒤돌아보면 메르스라는 치사율이 높은 신종 전염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허점과 의혹 투성이였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질병관리본부는 중동에 다녀온 최초 감염의심자(1번 환자)에 대한 메르스 검사를 두 차례나 거부했다. 2. 1번 환자의 감염사실이 확인된 후 1번 환자가 머물렀던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역학조사가 부실했을 뿐더러 격리조치는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 밀접 접촉자만 격리하고 일상 접촉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 평택성모병원에서 1번 환자로부터 감염된 신규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자 평택성모병원은 스스로 휴원결정을 내렸다.(평택성모병원은 자체적으로 폐쇄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정부의 보상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리고 병원은 코호트 격리를 해야하지 않느냐고 정부측 관계자에게 물었으나 정부는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하도록 하고 절대 메르스라는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여러 환자들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메르스 감염을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 16번 환자는 대전으로 이동해서 대청병원과 건양대병원에서 여러 명을 감염시키고 그중 일부는 사망했다. 이같이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조치가 메르스를 확산시키는 직접적 요인이 됐다. 다름아닌 '정부가 슈퍼 전파자'라는 표현은 지나치지 않다. 4.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렀던 40세 젊은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미 2박3일 동안 응급실에서 무방비로 수십명을 감염시킨 뒤였던 5월30일이었다.(14번 환자).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이 접촉 의료진에 대해 격리조치를 내린 것은 6월4일이었고,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6월7일부터였으며, 삼성서울병원의 문제해결을 위해 민관합동대응팀을 구성해서 대응한 것은 6월12일이었다.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감염자에 대한 대응을 삼성서울병원에 맡겨놓았음을 뒤늦게 인정했다. 국가의 의무를 민간에 맡기고 추후에 책임을 추궁했다. 5. 삼성서울병원은 정보공개를 거부한 정부 정책 때문에 14번 환자로 인한 감염 확산을 경험하고서도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정보공개조치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14번 환자에게 감염된 많은 환자들이 방치되면서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의료윤리에 대한 위반이다. 정부는 이 때도 정보를 숨겼다. 정부가 조기에 정보공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희생자를 양산했는데, 삼성서울병원도 일조한 것이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를 비롯한 일부 감염내과 의사들의 책임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상 열거한 것 외에도 수많은 허점과 의혹이 있다. 정부의 실수와 의혹은 모두 국정의 문제다.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메르스 민관합동 즉각대응팀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신종 감염병 대처에 대한 해답은 평택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환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병원의 역학조사 보고서에 있는데,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조사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 국정조사의 목적은 처벌이나 징계가 아니라, 명확한 사실확인을 통한 실패의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둬야 한다. 그것만이 메르스 사태를 비극으로 끝내지 않고,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예방주사로 만들 수 있는 길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