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주 중국 증시는 당국의 증시부양 대책을 비웃듯 하루 8% 이상 폭락하는 패닉장세를 연출했다. 그렇다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 증시가 좋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 등 가는 놈만 가는 극단적 차별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런 가운데 올해 국내 증시를 이끌었던 코스닥 시장도 변동성이 커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위기 요인들을 극복하고 상승추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대세이나 단기적으로 떨어지는 칼날은 피하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이다.
버블 붕괴 시나리오 재연되나
올해 들어 미국과 국내 증시의 특징은 나스닥과 코스닥지수의 동조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난주 코스닥지수가 나스닥 바이오주 부진과 함께 급락하면서 2000년 경험했던 버블 붕괴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1999년에는 글로벌 인터넷, 정보통신, 반도체 산업들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스닥은 82%, 자스닥은 227% 코스닥은 300% 급등했다. 올해 마찬가지다. 올해 4726.31로 시작한 나스닥지수는 5218.7로 8%가량 상승했고 연초 528.85으로 출발한 코스닥지수는 35% 올랐다. 이는 1999년 148%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나 상승을 주도한 제약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4.9배로 나스닥 바이오의 32.1배보다 39%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후 두 지수는 그야말로 폭락했다. 2000년을 기점으로 미국 IT업황이 꺾이면서 나스닥은 물론 코스닥지수는 그해 3월부터 연말까지 80% 하락했다.
'부익부 빈익빈' 종목 장세 심화
종목별 수익률 차별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올해 들어 나스닥시장에서 아마존, 구글, 애플, 월트디즈니, 길리어드 사이언스, 페이스북 등 상위 6개 종목이 시가총액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해 들어 나스닥지수가 7.5% 오르는 동안 아마존, 구글, 애플은 71%, 23%, 23% 상승했다. 지난 2013년만 해도 나스닥 종합지수가 38% 상승할 때, 상위 3개 종목이 차지한 비중은 17%에 그쳤다. 같은 해 S&P500지수가 30% 오를 때도 이들 3개 종목의 비중은 8%에 불과했다
나스닥은 IT , 코스닥은 제약업종
국내 코스닥시장에서도 주가 상승의 수혜는 몇몇 종목에만 집중됐다. 특히,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는 제약주의 수익률이 단연 돋보였다. 한미약품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연초 1만5440원에서 지난달 30일 13만2500원으로 750% 이상 뛰었다. 또한, 제약주도 한미약품(357.84%), 삼성제약(682.42%), JW홀딩스(388.42%), 한올바이오파마(291.93%) 등으로 연초대비 주가가 4배 가량 뛰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쏠림 현상이 지난 2009년부터 이어졌던 강세장의 마침표를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2007년과 1990년대 폭락 직전에도 극소수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렸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바이오·제약 업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50배가 넘어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고 최근 실적 하향조정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며 "당분간 과도한 주가에 대한 부담감이 수급 이탈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융자 급증한 증시, 조정시 위험도 커져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신용융자 주식 거래가 8조원에 달한다는 사실도 경계감을 불러일으킨다.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의 신용융자 잔고 금액은 8조286억원에 달했다. 올해 초 5조원에서 7개월 만에 무려 3조원 이상이 늘어난 것이다. 코스닥의 신용 잔고는 4조1406억원으로 올해 2월 코스피 (3조8880억원)를 앞지른 이후 격차가 더 커졌다. 중·소형주가 강세를 띠면서 코스닥으로 돈이 쏠리는 현상의 배경에 급격히 늘어난 신용융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코스닥의 시가총액이 코스피시장의 6분의 1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신용융자가 초래할 위험신호는 멀지 않은 중국에서도 확인된다. 하루에만 8% 폭락하는 등 중국 증시 변동성을 키운 주범으로 돈을 빌려 투자한 신용거래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지 중국 내 신용거래 규모는 상하이 증시 시가총액의 3.2%에 달하며 불법으로 거래한 장외 신용융자액은 약 4400억위안으로 추정된다. 특히, 장외신용거래의 경우 10%대의 고금리를 받고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져 중국판 서브프라임사태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시장 상황이 좋다면 신용융자잔고 증가가 큰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고 전망이 불투명할 때 증시 변동성이 커진다면 빚내서 투자한 개인들의 위험부담이 배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용 거래는 다른 악재가 생겼을 때 미칠 수밖에 없는 점에서 위험관리가 필요하다"며 "신용 거래 비중이 큰 종목은 변동성이 높으므로 지수 하락에 주가 하락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