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대전(大戰): 이긴 자, 지지 않은 자, 그리고 침묵하는 자

입력 : 2015-08-06 오전 6:00:00
지난 7월 한달간 대한민국 재계와 금융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삼성물산과 엘리엇간의 대전(大戰)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격렬한 지분싸움을 통해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던 이번 대결은 뜻밖에도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삼성물산의 압승으로 끝나가는 모습이다. 엘리엇의 향후 행보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예정된 수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불꽃 튀었던 전투가 끝나고 승패의 명암이 갈린 엘리엇 대전이 과연 어떠한 내용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우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전쟁의 기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승자의 강대함을 그리는 비망록이다. 이번 전투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의 합병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합병안의 가결은 이러한 승계절차가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을 통해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명실상부한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로 등극하였고, 삼성그룹에서 공식적인 3세대 경영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사실 엘리엇이 합병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을 때에만 해도 삼성그룹이 이렇게 완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예전의 유사사례들이 남긴 불편한 추억들로 인해 이번에도 외국계 헤지펀드가 대규모 시세차익을 먹고 떠나버릴 것 같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그렇지만 삼성그룹은 엘리엇의 공세에 대해 배수의 진을 치며 정면돌파로 맞섰고, 전체적인 전투의 진행방향을 투기적인 먹튀자본 대 대표 토종기업간의 대결구도로 몰아감으로써 합병에 대한 우호지분을 효과적으로 결집시켰다. 삼성그룹의 거대한 자본력에 '이재용호(號)'의 일사분란함이 더해져 위협적인 도전자를 격퇴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상당히 역설적이게도 엘리엇이라는 반대파의 등장은 합병안의 통과에 오히려 큰 힘이 되었으며,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과정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강력한 해외세력의 존재로 인해 '더 이상 먹튀는 안된다'라는 삼성그룹의 주장에 큰 호소력이 붙었고, 국내 기관투자자들과 개인 주주들은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없이 찬성으로 동조하였다. 또한, 주총 마지막 순간까지 양자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어 합병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증폭시켰고, 합병안의 통과가 확정되자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승자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갔다.
 
승자의 위세가 분명한 것과는 달리 합병안이 가결된 이 시점에서 엘리엇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려야할 것인가는 상당히 애매하다. 엘리엇이 합병안의 부결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엘리엇이 패배했다고 결론짓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합병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시간적·인적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수개월동안 삼성물산의 지분확보에 자금이 소요되었을 것이니 이에 대한 기회비용도 수반될 것이다. 합병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수준의 시세차익을 거둘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용들은 엘리엇의 투자규모를 감안할 때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업비용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엘리엇은 통합 삼성물산에 대해서도 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엘리엇에게는 패배자라는 평가보다는 '지지 않은 자'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더 적합할 듯 보인다.
 
전투가 끝난 전장에는 이제 적막함만이 남았다. 승자는 자신이 지켜낸 찬란한 황금의 제국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꿈을 꿀 것이다. 상처는 입었지만 패배하지 않은 엘리엇은 또 다른 승천을 기약하며 천천히 수면 아래로 사라져갈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이번의 전투가 결코 최후의 결전은 아닐 것 같다는 사실이다. 취약한 지배구조와 주주중심의 경영의사결정 구조가 정착되지 못한 우리 재벌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더욱 뚜렷해 보인다. 전장에서 흘린 피는 고스란히 침묵하는 수많은 민초들에게 돌아간다. 미래에 다시 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전투에서도 그러하다. 황금의 제국에서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부디 요란한 승전가에 묻혀버린, 침묵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혜안이 있기를 바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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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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