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동현실과 거꾸로 가는 노동개혁

입력 : 2015-08-09 오전 10:36:03
‘경제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 이후 노동개혁이 하반기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방치되었던 노동문제가 공론화되었다는 것은 좋든 싫든 노사관계 연구자로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말처럼 노동시장 개혁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랜 숙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개혁에 박수만 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많은 정책들이 개악으로 귀결된 경우를 다반사로 보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혁의 목표와 방법이다. 정부의 노동개혁 청사진은 노동의 양보만을 강제하며 기업의 책임은 빠져있다. 노동개혁 담화의 핵심 키워드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해고의 유연화다. 고용창출의 가장 큰 책임은 기업에게 있는데도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양보와 노동조합을 윽박지른다.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고용 해소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청년고용 악화 원인을 아버지 세대의 이기주의 탓으로 돌리고 정부와 기업의 책임에는 나 몰라라 한다. 대통령은 ’60세 정년제가 시행되면 향후 5년 동안 기업들은 115조원의 인건비를 추가 부담’한다는 경총의 일방 주장을 공식화하여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 통계가 과장되었다고 지적한다. “근로자가 60세까지 일한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2014년 기준)은 53세로 정년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비중이 67.1%를 차지하는 실정에서 가정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현실 진단은 노동개혁의 왜곡을 낳는다. 박 대통령은 “예전처럼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며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고용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서 기업의 임금인사정책의 전면 수술을 요구하였다.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가 고용창출의 걸림돌이며 그 해법은 유연성 확대를 위한 성과형 임금체계 도입과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이라는 귀결이다.
 
박 대통령의 인식은 노동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일반 국민의 상식과도 어긋난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되나.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 생산직노동자들 다 합쳐봐야 전체 노동자의 8%도 안 된다. 사오정(45세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남아 있으면 도둑놈)가 일터의 현실이다.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저임금노동자 비중,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화된 고용불안정, 월 200만 원 미만 저임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상황,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탈법적인 불법파견 관행 등은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어울리지 않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노동현장의 속살이다.
 
정부 대책은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에만 관심을 두지, 대다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애써 외면한다. 기껏 내 놓은 대책은 실업급여 인상 및 수급기간 연장을 고려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이 때문에 노동현실과 반대로 가는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계의 전면 반대에 직면해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개혁을 “낮은 임금-쉬운 해고”정책이라고 규정한다.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의 청사진부터 다시 짜야한다. 노동시장 개혁은 기업 규모간, 고용형태별, 성별 격차를 해소하여 노동시장 내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노동시장 내 열악한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 스스로 약속한 노동공약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 ‘근로시간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 비정규직 사회보험 적용확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박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일자리를 늘리고(늘)·지키고(지)·질을 올리는(오)는 '늘지오 공약'은 노동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정부와 함께 대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고용창출의 일차적 책임은 기업의 몫이다. 고통분담은 각 주체가 똑 같이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갖는 만큼 나누는 것이다. 재벌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고용안정과 창출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노동개혁은 지시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사의 자각과 혁신으로 완성된다. 노동 개혁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필요한 때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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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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