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M&A큰장 서는데..PEF역할론 부상

구조조정 임박..굵직한 매물 줄줄이 대기
대기업 인수 부담..PEF육성 필요성 대두

입력 : 2009-06-09 오후 4:11:24

[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산업계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임박했다. 시장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자산이나 계열사를 매각하며 강도 높은 '군살빼기'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인수합병(M&A) 시장에는 굵직한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시장이 매물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느냐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나 사모투자펀드(PEF)가 주요 매수세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이 인수합병 시장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만약 시장이 매물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경우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군살빼기 작업에 제동이 걸리는 등 구조조정에도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 

 

◇ 신용위험평가 마무리..계열사 매각 임박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이번주 안에 금융권 차입이 500억원을 넘는 434개 대기업 중 30~35곳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앞서 채권은행들은 부실 우려를 안고 있는 9개 주채무계열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마무리했다.

 

아울러 채권단은 신용공여액이 50억 이상~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에 착수했다. '신용위험평가→재무개선약정 체결→계열사, 자산 매각→인수합병 활성화'라는 구조조정 시나리오의 밑그림이 거의 완성된 셈이다.

 

이에 따라 시장은 올 하반기 크고 작은  매물들이 인수합병 시장에 쏟아져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대우건설(047040) 풋백옵션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은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금호생명 매각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금호는 다음달까지 대우건설 풋백옵션에 투자할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FI)를 유치하지 못하면 대우건설(047040)마저 매각해야 한다.

 

동부도 동부메탈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대한전선(001440) 역시 계열사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하이닉스(000660)대우조선해양(042660) 등도 조만간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 물건은 많은데..'누가 살까?'

 

그러나 누가 매물을 사들일 것인지가 여전히 관건으로 남아있다. 일단 전문가들은 현금이 풍부한 대기업이 직접 매물을 인수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쉽게 나서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합병이 더이상 '이벤트'가 아닌 일반적인 투자개념으로 확립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불확실한 경기여건을 무릅쓰고 단독 인수전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많은 국내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해왔다"면서도 "현재 경기상황을 볼 때 현금이 풍부한 대기업들도 인수합병에 관심을 갖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PEF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PEF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10% 이상 매수한 뒤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높인 뒤 이를 되팔아 수익을 얻는 합자회사를 뜻한다. 통상적으로 좋은 매물을 싸게 산 뒤 비싼 방식으로 매각해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 PEF 역할론 주목

 

그러나 올 하반기 인수합병 시장에서 PEF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낼지는 미지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2월 이후 올해 5월까지 조성된 81개의 PEF 출자약정액은 모두 15조90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실제로 인수합병 시장으로 갈 수 있는 잠재적인 펀드금액의 '최대치'는 6조5000억~7조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지난 5월에 산업은행의 턴어라운드 PEF(946억원) 등 4개가 추가로 설립됐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실패한 한화(000880)의 경우 당시 인수가격으로 6조~7조원 가량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당시 인수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며 가격이 올라간 측면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매물의 규모를 감안하면 PEF 자금이 하반기 인수합병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수합병 시장을 겨냥한 PEF 조성 역시 아직까지는 뜬구름 잡는 수준이다. 금감원 자산운용팀 관계자는 "최근에 은행 등과 PEF 신규설립에 대한 협의를 시작하고 있지만, 내부적인 구상단계 수준일 뿐 PEF 추가조성은 사실상 초기단계에 머물러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기업집단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인수합병 시장으로 흘러올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공정위는 최근 자산규모가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설립한 PEF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취득할 경우 15% 의결권 제한규정을 5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 "PEF 시장 적극 육성해야"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PEF를 통한 군살빼기 작업은 시장전체적으로나 각 기업의 경영정상화 측면에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각종 규제 때문에 PEF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이번 구조조정 계기로 PEF 시장을 더욱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각대상 기업을 갖고 있는 채권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회복되고 자금경색이 풀릴 때까지 매각대상 기업의 가치를 유지하거나 최대한 높이는 게 채권은행의 역할"이라며 "하지만 지금처럼 마땅한 매수주체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낮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외환위기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거나, 매각을 유예해서 가격이 괜찮을 때 매각이 이뤄졌다"며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나 채권은행들이 무턱대고 계열사 혹은 기업을 매각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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