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1등 가수 과잉의 시대

입력 : 2015-08-18 오전 6:00:00
"OOO, 음원 차트 1위 싹쓸이". 포털 사이트의 연예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사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과 5분 후 이런 타이틀의 기사를 보게 된다. "XXX, 음원 차트 1위 싹쓸이". 한날한시에 신곡을 발표한 OOO와 XXX가 모두 1등 가수란다. 어떻게 된 걸까.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까지 방송된 KBS '가요톱텐'은 당시 유일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었다. 1등 가수는 1주일에 한 번 전파를 타는 '가요톱텐'에 의해 결정됐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수에게는 골든컵이 주어졌다.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던 조용필이 7회, 신승훈이 4회, 서태지와 아이들이 3회 골든컵을 들어올렸다. 이들이 당시 가요계를 주름잡은 1등 가수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가요톱텐' 외에 1등 가수를 발표했던 것은 연말 시상식 정도였다.
 
하지만 가요 시장이 온라인 시장 중심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0개가 넘는 온라인 음원 차트가 1시간마다 실시간 차트를 내놓고 있다. 음원 차트는 매시간마다 요동친다. 어느 한 음원 차트에서 1시간만 1위를 차지해도 1등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한날한시에 신곡을 낸 OOO와 XXX가 동시에 1등 가수가 되는 기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반 관계자들은 주식 투자를 하듯 실시간 차트를 살피느라 바쁘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1등 가수로 만들기 위해 '스밍'(스트리밍, 음원을 반복 재생해 순위를 올리는 것)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사이 음원 차트에선 진정성 있는 음악이 실종됐다. 1등 가수는 많아졌지만, 대중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는 잘 없다. 요즘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노래 중 대부분은 인기 아이돌의 후크송이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화제를 모은 노래들이다. 가요 기획사들은 소속 가수를 차트 1위에 올려놓기 위해 '음원 차트용 노래'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 한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로 사랑을 받았다. 1등 만능주의에 빠진 세상을 풍자한 말이다. 하지만 요즘 가요계에는 1등이 많아도 너무 많다. '1등 가수 과잉의 시대'다.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의 1등 가수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1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성 있는 노래로 대중의 가슴을 울리는 가수가 진짜 1등 가수다. 차트 1위에 대한 걱정보다는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해욱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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