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정몽준(6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내년 2월 열릴 예정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정 명예회장은 앞서 부패 의혹에 시달리는 FIFA의 현실을 질타한 가운데 이날 FIFA의 투명성 확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 명예회장은 1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출마 선언식을 열고 장문의 발표를 통해 "FIFA는 상식과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을 되살릴 리더가 필요하다"며 총 9개 항으로 된 공약을 밝혔다.
이날 정 명예회장이 출마를 공식 선언한 파리는 1904년 FIFA 출범 당시 본부가 있던 곳이자 그와 경쟁할 미셸 플라니티(59)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의 소속 국가이기도 하다. 정 명예회장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장소를 찾아 FIFA 회장 출마를 만방에 알렸다.
정 명예회장은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면서 "FIFA 회장과 집행위원회, 사법기구 간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고, FIFA 총회를 '열린 토론의 장'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부패 의혹의 '몸통'으로 꼽히는 제프 블라터(79) 현 회장이 17년간 FIFA 회장 자리를 지켰던 점 등을 겨냥해 "이번 선거의 핵심은 제프 블라터 회장이 40년간 구축해 온 부패 체제를 이어갈 것이냐 말 것이냐"라면서 "난 단 한 번만 회장직을 맡겠다. FIFA를 개혁하는 데 4년이면 충분하다"고 약속했다.
정 명예회장은 '반부패'와 함께 '탈유럽'을 선거전략으로 내세웠다. 그간 FIFA 회장 8명 중 7명이 유럽인이었다. 이번에는 유럽 밖 인물이 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유럽이 건전하고 분별력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FIFA가 부패에 빠졌겠느냐"며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FIFA는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인구가 세계 인구의 80%다. '계속성'도 중요하나 '변화'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출마 선언으로 FIFA 회장 선거전이 본격 시작됐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7월 출마 의사를 밝힌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60)을 비롯해 FIFA 부회장이자 지난 회장 선거에 출마해 블래터와 완주한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40), '브라질의 축구영웅' 지쿠(62), 아르헨티나의 '살아있는 축구전설' 디에고 마라도나(55), 무사 빌리티 라이베리아 축구협회장(67) 등과 내년 2월26일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에서 득표 대결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거론되지 않던 제3 후보가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제 축구계와 언론은 플라티니 회장이 당선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알리 왕자와 정 명예회장이 그 뒤를 쫓는 것으로 본다.
플라티니 회장은 남미축구연맹(CONMEBOL)의 '공개 지지 선언'을 얻어냈고 UEFA, 아시아축구연맹(AFC),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등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알리 왕자는 지난 5월 '반(反)블래터'를 기치로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해 135표를 얻었다. 직전 선거에 나선 만큼 인지도가 높다.
정 명예회장으로선 '텃발' 아시아에서 플라티니 회장과 알리 왕자의 표를 빼앗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소외지역을 설득해 지지 세력을 키워야 승산이 있다. 최근 독일과 스위스 등지 언론에 '플라티니, 추악한 전력' 제목으로 플라티니가 2010년 12월 열린 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 때 카타르에 투표했고, 카타르의 월드컵 유치 직후 그의 아들이 카타르 국부 펀드에 취직했다는 내용이 담긴 익명 투서로 플라티니가 추문에 휩싸인 점은 정 명예회장에게 큰 호재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내년 2월로 예정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사진=로이터통신)
다음은 정몽준 FIFA 회장 출마 선언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자 합니다.FIFA는 축구에 관한 기구입니다. 하지만 그저 축구 경기를 관리하기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축구계의 행정 통합관리를 담당하는 곳입니다.
현재 FIFA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FIFA 차기회장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조직을 개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FIFA의 회장은 기술 관련부문의 책임자가 아닙니다.
저는 FIFA 회장이 축구 팬들의 야유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2011년 유럽의 한 스포츠잡지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5퍼센트가 ‘블래터가 축구를 망치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1904년, FIFA는 이곳 파리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후 111년동안 8명의 회장이 배출되었습니다. 사실상 모두 유럽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FIFA는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계속성'도 중요하지만, '변화'도 중요합니다. 현재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시아에는 44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12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두 대륙의 인구를 합치면 세계인구의 80퍼센트가 넘습니다. 만약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요도시들이 유럽 축구 구단들과 견줄 수 있는 구단을 보유하게 된다면 세계축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해 보십시오.이것이 바로 축구의 미래입니다.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이제 FIFA가 이런 미래 비전을 실현해야 때입니다.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FIFA를 다시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만들 때입니다.
20년 전 처음 FIFA에서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저는 투명성과 책임성를 촉구해왔습니다.
1995년에 했던 연설에서 제가 어떤 말을 했는지 함께 보실 까요? 여러분께 나눠드린 '월드컵과 그 미래'라는 제목의 글 첫 페이지에 나와있습니다. "분명히 월드컵 마케팅 및 중계권을 위한 입찰과 계약협상 절차는 재검토 되어야만 합니다. FIFA는 더 많은 투명성이 필요합니다. 마케팅과 텔레비전 중계권 계약에 관한 결정 절차가 막후에서 소수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FIFA 미디어위원회는 미디어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사항을 고려하고 최적화된 중계 방송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마케팅과 텔레비전 중계권 계약에 관한 결정 절차에 관여해야 합니다. 재정위원회는 재정상태에 대한 지침을 내려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FIFA 집행위원회가 마케팅 및 중계권 계약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동안 월드컵의 경제적 가치가 평가절하되어왔기 때문에, 더 투명한 절차를 도입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보더라도 이보다 더 강력한 경고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처음 FIFA에 들어와서 이상하게 느꼈던 점은 월드컵 TV 시청자들이 올림픽 TV 시청자들보다 3배 이상 많은데, FIFA의 TV 중계권료 수익이 IOC의 TV 중계권료 수익보다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왜 아무도 이런 괴리를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FIFA의 수많은 부패문제는 바로 이런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11년 국제투명성기구는 FIFA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FIFA의 독립지배구조위원회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세 개 파트로 구성된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 보고서들의 권고안은 이행되지 않았을까요?
FIFA의 문제는 부패에 연루된 사람들이 부패를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데 있습니다. ISL 사건과 비자-마스터카드 사건은 FIFA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이를 덮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ISL 부패 스캔들을 정리한 자료를 가져왔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블래터 회장은 사임을 발표하면서 FIFA의 집행위원회가 개혁을 방해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륙 축구 연맹들의 부패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FIFA가 이토록 부패한 조직이 된 진짜 이유는 40년 동안 한 사람이 자기 측근들을 데리고 장기 집권을 했기 때문입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합니다. 그런데 몇몇의 집행위원회 위원들은 오늘도 여전히 무엇이 문제냐고 합니다.
여러분, 지난 몇 십 년 간 FIFA는 재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공이든지 그에 따르는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조직이 부패하지 않으려면 지도자가 주기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은 행정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몇 십 년 간 계속 팽창하고 있는 FIFA의 부패문제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FIFA에 '상식'과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을 되살릴 리더가 필요합니다.
FIFA가 시작된 이곳 파리에서, 저는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만약 유럽이 건전하고 분별력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면, 오늘날 FIFA가 이런 혼란에 빠져 있을까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FIFA를 개혁 할 수 있는 진정한 후보자를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 드리려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블래터 회장이 40년 간 구축해온 부패체제를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냐 말 것이냐입니다. 조직의 지도자가 스스로를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조직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FIFA 회장이 된다면, 4년 임기 한 번만 회장직을 맡을 것입니다. 저는 FIFA를 4년 안에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 모든 축구팬들에게 약속합니다.
저의 말씀을 마치기 전에, 최근 아들을 떠나 보낸 프란츠 베켄바우어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베켄바우어와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주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과 레나르트 요한손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께서 하루빨리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선거공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회장과 집행위원회, 사법기구 간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겠습니다.
2. 총회를 열린 토론의 장으로 바꾸겠습니다.
3. 회장직에 임기 제한을 두겠습니다. 저는 한 번만 하겠습니다.
4. 재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겠습니다.
5. 회장의 급여, 보너스, 제반 비용을 공개하겠습니다.
6. 각국 협회에 제공하는 재정지원프로그램(FAP)을 합리적이고 유연한 분배 방식을 통해 증대시키겠습니다.
7. FIFA내 각급 직위에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하겠습니다.
8. 여자월드컵의 상금을 상향조정해서 여자월드컵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준혁 기자 lee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