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자

전쟁 승리한 지도자가 아니라 평화 정착시킨 지도자가 ‘진짜 영웅’

입력 : 2015-08-23 오후 1:32:53
남·북한 사이에는 수많은 무력 대결과 침투가 있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교류도 이어져 왔다. 개성에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단이 세워져서 남·북한의 노무자들이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남·북한 사이에는 두 번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수차례의 총리급 고위회담이 열렸으며, 평화와 통일을 향한 공동성명이 여러 번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적대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상호 비방과 무력 충돌도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정상선언은 남북관계가 더 이상의 적대 상태로 발전하는 것을 억지해 준 효과가 있다. 이들 모두가 극적인 계기에 의해 마련되었다. 7·4 공동성명은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하여 본격적인 남·북한 대화의 장을 처음으로 열었다. 1991년 기본합의서는 세계 냉전이 끝나는 상황에서 남·북한도 그 흐름을 타고 총리급 회담을 개최해 체결한 합의서였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권력을 승계 받은 김정일이 6년에 걸친 권력공고화를 이룬 후 처음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7년의 10·4 정상선언은 남·북한의 공동사업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중에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내용 면에서나 그 뒤에 숨은 평화에 대한 의지에 있어서 세계 다른 어느 지역의 평화를 위한 합의서보다 잘 되어 있다. 이 합의서는 1972년 서독과 동독이 교류와 협력을 위해 체결했던 동·서독 기본조약보다도 더 잘 되어 있다. 남북한이 기본합의서의 내용만 이행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 확실하다. 특히 현재와 같이 남·북한의 대립이 극한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양쪽의 정책결정자들은 기본합의서의 조항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앞선 지도자들이 가졌던 평화에 대한 의지를 본받으려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공식 명칭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고, 이를 줄여서 기본합의서라 부른다. 이 합의서의 전문은 남·북이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해와 관련된 제1장은 1조부터 4조까지 상호 체제 인정과 존중, 내정간섭 배제, 상호 비방·중상 금지, 상호 파괴·전복 행위 금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불가침과 관련된 제2장의 제9조는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말 것, 제10조는 의견 대립과 분쟁 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되어 있다.
 
선진국의 외교정책은 이념보다는 국가이익 수호와 국민보호가 우선이 된다. 1970년대 초반 보수주의자인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국내·외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현실적 정치학자인 헨리 키신저를 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하고 중국 및 소련과의 데탕트를 추진하도록 했다. 미국정치사에 전무후무하게 키신저는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겸임하면서 외교정책 결정과 집행을 혼자서 수행했다. 이와 같이 지도자가 자기 이념과 다른 방향의 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 과감하게 그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인사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지도자이다. 지금 남·북한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지도자이다.
 
우리의 현 정부는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을 너무 이념에 기반해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념적 성향이 다른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정상회담과 유연한 대북정책을 답습하기 싫다면, 같은 성향의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추진한 대북정책을 계승하면 된다. 남북대화의 물꼬를 튼 7·4 공동성명,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 아직 권력이 완전히 공고화했다고 볼 수 없어 체제 안정성이 부족한 북한도 대외문제에서 부담을 줄이는 것이 체제안정 추구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 시대의 영웅은 전쟁에서 이긴 지도자가 아니라 평화를 정착시킨 지도자이다.
 
김계동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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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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