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직전까지 갔던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8·25합의를 통해 해소시킨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의 첫 정상외교를 중국에서 시작한다. 박 대통령은 중국 ‘항일·반파시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차 2일 베이징을 방문해 첫 일정으로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다음날인 3일 열병식과 오찬 리셉션 등 전승절 본행사 일정을 소화하는 박 대통령은 이후 상하이로 이동해 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 방중 일정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열병식 참관이다. 박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주석과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오르는 장면은 2차 대전 종전으로부터 70년, 그리고 한국전쟁 휴전으로부터 62년이 지난 현재의 변화된 한·중 관계를 상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954년 이 자리에서 중국 주석(마오쩌둥)과 함께 열병식을 내려다 본 인물은 북한의 김일성 수상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1년이 흐른 2015년 중국 주석의 옆자리에는 한국의 박 대통령이 서게 된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대표로 파견한다.
한미동맹을 그 어떤 외교관계보다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미국의 대 중국 견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는 것은 동북아의 판도 변화를 상징한다. 이 대목에서 관심사는 톈안먼 성루 현장에서의 의전이다. 시 주석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미국이 껄끄러워하는 나라의 정상들이 모이는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동선과 행동, 표정을 보일지 미국이 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 정상들 가운데 톈안먼 열병식에 참석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박 대통령의 등장을 최대한 부각시키려는 중국과, 대 미국 외교에서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한국의 치열한 물밑 협상이 벌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일 개최되는 한·중 정상회담의 주된 대화 포인트는 한반도 문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벌어졌던 남·북 긴장 상황, 북한 핵문제와 장거리 로켓 발사 동향 등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31일 브리핑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소중한 계기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6자회담 재개나 북한의 로켓 발사 등에 있어 중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시 주석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강력히 원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나라는 자신들이 아니라 주요 당사자인 미국과 한국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에서는 2일 오후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의 면담 자리에서 나올 경제 관련 대화가 관심이다. 주철기 수석은 이 면담에 대해 “세계 및 지역경제가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한·중 FTA 활용 등 양국간 호혜적 경제 이익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와 앞으로 양국 경제협력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지에 대해 총체적 협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 리 총리는 특히 최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불안해진 경제 상황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2012년 5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재개를 제안할 경우 시진핑 주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연내에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동시에, 그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까지 개최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간 3국 정상회담 재개에 의욕을 보이지 않아 왔고, 또 일본이 이번 전승절 행사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은 데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31일 중국 허베이성 한단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내달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있을 열병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 국기 ‘오성홍기’와 붉은색 별 모양의 도구를 들고 종전 70주년을 상징하는 ‘70’ 대형을 만들었다. 사진/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