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소가 올 초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기존 주거래 은행의 변경을 희망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기존에는 계좌에 연동된 자동이체를 건건이 옮기는 것이 번거로워 주거래 은행을 바꾸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다음달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동이체를 별도의 신청없이 다른 은행 계좌로 옮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주거래 은행 변경을 희망하는 고객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계좌이동제는 고객이 주거래 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기면 기존 은행에서 빠지던 급여, 공과금, 통신비 등 출금이체와 자동송금 내역을 한꺼번에 옮겨주는 제도로, 10월 시행을 앞두면서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은행, 특화상품으로 주거래고객 모시기 한창
1일 국내 자산규모 1위 은행으로 새 출범한 KEB하나은행은 출범과 동시에 계좌이동제에 대응할 상품인 '행복노하우 주거래 우대통장', '행복투게더 정기예적금통장'을 내놨다. 아울러 10월부터는 통합 멤버십을 시행해 은행, 카드, 증권, 캐피탈, 생명, 저축은행 등 그룹 내 전 계열사의 거래 실적에 따라 포인트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행복투게더 정기예금'은 1년제로 1인당 50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 우대금리 적용시 최대 연 1.7% 금리를 제공한다. '행복투게더 적금'은 1년, 2년, 3년, 5년제로 5년제 정액적립식의 경우 우대시 최고 2.6% 금리를 적용한다. '행복노하우 주거래 우대통장'은 급여이체, 연금이체, 카드결제, 아파트관리비, 공과금 이체 2건 중에서 하나에만 해당되더라도 전자금융수수료와 KEB하나은행 자동화기기 타행이체 수수료를 무제한 면제한다. 2개 이상 해당이 되면 다른 은행 자동화 기기와 창구 이체 수수료도 10회까지 면제해준다.
KB국민은행은 계좌이동제 특화상품으로 'KB국민ONE통장'을 출시했는데, 영업 18일 만인 지난달 24일 기준 가입자 10만명을 넘었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으로, 매월 이 통장에서 공과금 이체(세금·통신·보험료 등) 또는 KB카드(신용·체크) 결제실적이 1건만 있는 경우에도 3개 수수료(전자금융타행이체·KB자동화기기 시간외출금·타행자동이체)를 무제한 면제한다. 추가로 급여이체, 연금수령, 가맹점결제 중 1건 이상 추가 실적이 있으면 3개 수수료(타행 자동화기기출금 월 5회·SMS입출금내역통지·KB자동화기기 타행이체 월10회)도 면제된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입출식·카드·신용대출 상품인 '우리 주거래 고객 상품 패키지'에 이어 8월 예적금 결합상품 '우리 주거래예금', 9월 통신비 및 아파트 관리비 출금 전용 대출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주거래 통신, 관리비통장대출'을 차례로 선보이며 차별화에 나섰다. '우리주거래예금'은 한 계좌로 예·적금을 통합관리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정기예금을 적금처럼 자유롭게 추가입금이 가능하며 만기에는 자동 재예치돼 최장 10년간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특히 입금 건별로 별도 만기가 적용되어 일부 자금이 필요한 경우 전체예금을 해지할 필요없이 분할지급이 가능하여 중도해지에 따른 불이익도 줄일 수 있다. 최소 가입금액은 100만원, 금리는 우대금리 적용기준 최대 연 1.65%다. 고영배 우리은행 개인영업전략부장은 "우리은행은 계좌이동제에 대응하여 단순히 금리, 수수료 만으로 고객을 단기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별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평생 주거래화 하기 위해 패키지화된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계좌이동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에 대비하기 위해 '신한 주거래 우대통장'을 최근 업그레이드했다. 이 통장은 신한카드 결제시 수수료 3종(전자금융·신한은행 인출, 타행 자동이체)을 면제해주고, 급여이체만으로도 다섯가지 수수료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우대요건을 충족하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입출금 계좌에도 수수료 등 혜택을 제공한다.
금리 차별화 '미미'…장기 고객 시선 끌어야
해외에서도 계좌이동제를 도입한 경우가 있다. 영국은 지난 2009년 계좌이동제를 도입했다가 2013년부터 새롭게 보완한 신계좌이동제를 시행중이다. 계좌 이동에 30여일이 소요돼 고객의 외면을 받았지만, 영업일 기준 7일 이내에 업무가 처리될 수 있도록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제도를 보완한 2013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영국에서 발생한 계좌 이동은 약 175만건이다. 특히 바클레이즈(Barclays), 로이드(Lloyds) 등 대형은행들이 소극적 대응으로 계좌 유출이 많았던 반면, 산탄데르(Santander), 할리팩스(Halifax) 등 중소형은행들이 고강도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많은 계좌를 확보했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주거래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상품전략으로 패키지를 택하고 있는데, 제시이율이 기존 상품과 비교해 금리 차별화는 없다"며 "고객입장에서도 금리 민감도가 높지 않아 금리를 고려한 은행 선택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신규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거래고객 혜택의 문턱을 낮춰서 신규회원 유입을 늘리고,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에게 금리우대 상품을 제시해 주거래 변경의향이 있는 고객을 유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선 기자 kbs726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