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집회·시위의 자유는 진정 보장되는가

입력 : 2015-09-07 오전 6:00:00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오늘날 왜곡된 민주주의 역사만큼이나 집회시위의 자유도 왜곡된듯하다.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6중 차벽. 근처 지하철 출입구는 젊은 경찰들의 몸으로 원천차단 되고 있다. 서울도심이 일순간 계엄선포가 된 느낌이다.
 
20여년의 민주화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의 집회시위 진압방법은 매우 진화된듯하다. 80년대 민주화과정에서 열린 집회를 가장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최루탄이었다면, 현재는 겹겹이 시위현장을 둘러싼 차벽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시민들의 반응과 분위기도 바뀌었다. 일명 백골단에 끌려가는 학생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넥타이부대가 나서는 아름다운 풍경 대신, 내갈길 바쁜데 무슨 시위냐고 불만이 앞선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광우병 파동 촛불시위는 야간 도심 집회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 유모차에 탄 어린아이를 데려온 주부의 용기는 한층 발전된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내 아이와 우리 가정의 건강이라는 의제를 집회시위에서 표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기본권 주장은 더욱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가장 진화한 쪽은 경찰과 사법당국이다. 우선 집회의 사전불허와 원천차단을 매우 주도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경찰은 집회참여자와 시민간의 소통을 원천 차단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가 어떻게 유린당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집회 시작전 주요 장소에는 이미 6중의 경찰차벽이 설치되었다. 경찰책임자가 교통소통 목적을 위해 설치된 CCTV를 집회시위 지휘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경찰의 증거확보활동은 디지털시대의 극단을 보여준다. 경찰의 포괄적인 채증활동은 집회참여자를 포함한 근처 지나가는 모든 시민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임을 전제로 한다.
 
집회시위 사전허가금지원칙을 천명한 헌법은 사라지고, 왜곡된 집회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만 거리를 감싸 돌고 있다.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관련 집회시위 사건이 단적이 예이다. 그 집회는 서울행정법원이 사전금지통고가 무효라고 결정을 이미 내린 집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집회시위신고서 범위해석을 억지로 해서 폭 1미터 이내 길이 10여 미터만 집회공간으로 허용하고 그 면적 가장자리를 경찰관과 견고한 플라스틱 물체로 완전히 포위했다. 당시 집회주최 변호사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당하는 수모를 겪었다.(물론 이후 형사재판에서 그런 유형의 집회방해를 한 경찰측의 불법성이 인정되었다)
 
경찰이나 보수적인 단체 주장에 의하면, 집회시위를 사전 차단해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를 ‘정치적 시위로 변질할 우려’, ‘폭력적 시위 예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불성설이다.
 
먼저 정치적 시위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자유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형성하기 위해 보장되는 기본권으로서 민주주의 사회형성을 위한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정치적 집회라는 이유로 집회를 사전 차단할 수 있다는 경찰 등의 논리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폭력적인 시위예상이라는 논거는 집회시위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선험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말 그대로 경찰의 ‘예상’일 뿐이다. 그 예상을 근거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자유를 사전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폭력적인 집회시위가 일어났다면, 그 행위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뿐이다.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는 상황에는 예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부분의 충돌은 경찰의 차벽설치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법당국의 엄정처벌은 더욱 공포스럽다. 집회시위 주최측의 대표에게 집회참여자 개인들의 폭력적인 행사에 대한 공모공동정범을 인정하고 일반교통방해죄를 추가해 기소한다. 수천명이 참여한 집회시위에서 집회해산이후 행진하던 소규모 시민들이 경찰들과 충돌하고 기물을 파손했다면, 역시 그 행위자를 처벌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집회시위 주최측 대표자가 구체적으로 불법행위를 지시하거나 방조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자라는 이유만으로 엄벌에 처하고 있다. 일사분란에게 조직화된 범죄단체의 우두머리에게 적용되는 법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추모 416국민연대 압수수색과 인권활동가 박래군씨의 구속을 보면서 현재 민주주의의 퇴행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목격했다. 세월호 1주년 추모집회가 어떻게 원천 차단되었고, 시민들이 어떻게 기본권을 침해당했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최근 일본 국회 앞에 12만명이 모여 ‘안보 법제 제개정안의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보면서 필자는 매우 놀랐다. 그 곳에는 경찰차벽설치도 없고, 경찰은 최소한의 질서유지활동만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국회 앞에서 12만명이 모여 정부의 중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집회를 할 수는 있었겠는가? 이미 차벽이 5~6중으로 쳐지고, 여의도일대는 시위자참가자보다 더 많은 경찰병력이 집결했을 것이다. 집회개최 관련 단체 대표에게는 체포영장 내지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을 것이고, 그 집회 참가자들은 종북좌파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그 동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야간도심집회, 신고없는 우발적 집회까지도 원칙적으로 모두 적법한 것으로 판결을 내렸다. 서울광장 원천봉쇄 차벽설치가 시민들의 일반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판결은 온데 간데 없고, 정부는 이러한 형태의 집회에 대하여 사실상 집회사전금지제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정확한 법리적 해석과 적용보다는 정권유지나 질서유지 차원에서 집회시위를 접근해왔다. 집시법 조문을 왜곡해 집회 사전차단과 엄벌주의로 일관하여 시민들의 입을 막고 있다. 정부는 국민들이 정부정책과 책임자를 비판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집시법은 평화로운 집회보장을 위한 매우 절차적인 규정이지, 집회를 사전에 금지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다. 이러한 핵심기본권에 대한 통제와 제한은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집회시위 자유의 억압의 참상은 민주주의의 오욕적인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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