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포격도발에 분노한 진짜 이유

오늘 부는 바람은

입력 : 2015-09-07 오후 6:46:40
북측은 지난달 20일, 포격 도발을 감행했다. 이유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설치된 대북방송 확성기. SNS에는 전투복·전투화를 꺼내 임전무퇴를 다짐하는 ‘인증샷’이 퍼져나갔다. 2010년에 시작한 참전의사에 관한 조사에서 20대의 긍정적인 응답률은 계속 상승세를 보였다. 참전의지의 상승세와 엮어서 SNS의 때아닌 군복 물결을 애국심으로 읽어내는 시각이 있지만, 여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판문점에서 극적인 협상으로 당장의 전쟁은 피해갔지만, 짚을 건 짚어야 한다. 북측은 줄곧 그들의 ‘최고존엄’을 모욕하는 망동(妄動)에 대한 응징이라며 크고 작은 도발을 이어오다가 이번에 이르렀는데, 이렇게까지 나올 만한 일이었을까.
 
당장 포탄이 떨어진 서부전선에서 비상사태로 긴장했을 병(兵)들이 견뎌내는 모욕은 확성기 대북방송 따위에 댈 게 아니다. 물론 군대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동부와 서부, 그리고 전·후방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대북방송에는 아이유의 ‘마음’과 같은 감미로운 음악이라도 드문드문 있지, 영내에서 자행되는 모욕을 포함, 인권유린과 유·무형의 폭력은 쉬는 시간도 없다. 어제도, 오늘도, 더 나쁜 것은 내일도 예정돼 있다. 여기에는 대화와 타협도 없다. 시간은 약이 아니라 답이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말은 병영 부조리를 집약적으로 보인다.
 
 
캡처/바람아시아
 
한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한 20대 역시 다양한 모욕을 연습한다. 학교 안에서는 때때로 전공에 따라 서로를 구분하고, 몇몇 입학 전형은 요즘 유행하는 ‘충(蟲)’이 붙어 혐오언어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어떤 학생들은 학점·논문·취업 등에 저당 잡혀 제자가 아니라 종처럼 굴어야 한다. 최근에 ‘인분교수’가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학부생이 몇몇 질 나쁜 교수에게 성폭행 같은 모욕을 당한 사례 역시 드문 일은 아니다. 학교 밖에서는 대학입학 시험을 마친 시점부터 학교 서열의 벽을 절감한다. 학교의 소재지에 따라, 그리고 지방 소재 대학도 국·공립인지 사립인지에 따라, 서울에 있다면 그 안에서 또 서너 대학씩 묶어서 꼼꼼하게 등급을 구분한다. 학교에 다닐 때는 둔감할 수 있지만, 구직시장으로 나서면 이 차별을 체감한다.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은 구직시장에서 취업 양극화의 원인으로 ‘출신학교 등 학벌’을 40.2%로, ‘나이로 인한 차별(48.7%)’에 이어 2위로 응답했다.
 
노동현장이라고 호락호락할 리 없다. 지난 7월 ‘알바몬’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중 72.1%가 부당대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과잉근무(41.3%)’나 ‘임금체불(27.9%)’ 등은 새로울 게 없지만, 다섯 명에 한 명꼴로 ‘조롱, 반말 등의 인격모독(21.1%)’을 겪었고, 지난해엔 기타의견으로 처리됐던 '욕설, 위협 등의 폭언'이 12.9%로 떨어져 나와 6위에 자리했으며, '법 또는 도덕적으로 불합리한 업무지시(9.3%)', '성희롱, 스토킹, 신체접촉(5.6%)', '물리적 폭력 및 위협(4.2%)' 역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역치가 너무 높아진 만큼, 급여를 10원짜리로 바꿔서 주는 정도는 돼야 눈길을 끌 수 있다.
 
김정은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지만 훈련병은커녕 소대장도 겪어보지 않았으며, 학업의 부담 없이 북한의 최고 명문대학을 나왔으며, 조선노동당 제1비서지만 정작 노동의 고단함을 모른다. 20대에 폭력을 마주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30대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그까짓 대수롭지 않은 방송 몇 마디가 거슬린다고 한반도를 전쟁 분위기로 몰아갔다. 이남의 청년들에게 그가 고모부를 잡을 때 쓰던 고사포 같은 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대북방송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모욕’을 겪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곳곳에서 쏴대는 포탄 때문에 하늘은 포연으로 뒤덮이고 땅에는 곳곳에서 불기둥이 치솟으며, ‘서울불바다’는 몇 분 안에 가능하다. SNS의 인증샷 행렬은 이런 맥락에서, 분노의 표현도 금수저만 할 수 있다는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분노로 보는 게 온당하다. 전운(戰雲)은 걷히고, 청년들은 다시 모욕의 현장으로 돌아가 오늘도 의연하게 어른이 되기 위해 한 발짝씩 내디딘다.
 
 
 
캡처/바람아시아
 
끝으로, 전쟁의 승리에는 유형전력뿐만 아니라, 정신력 같은 무형전력 역시 중요하다. 남조선의 생계형 방산비리를 보고 승리를 확신했다면 큰 오산이다. 법이 준엄한 만큼 ‘우리민족끼리’에 이 졸문을 실을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곳곳에서 암약하는 남파 간첩 중에 아무라도 그들의 ‘최고존엄’을 심히 모욕한 이 글을 보거든 공산통일의 헛된 꿈은 포기하라고 평양에 보고하기를 권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은 훨씬 여문 청년들이 건재한 한 자유대한은 전쟁에서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김용재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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