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희망펀드 기부도 실적 압박?

일부 은행선 '고객 선점해야' 판촉 공문…금융노조 "강제 할당 안될 일"

입력 : 2015-09-22 오후 3:59:51
고용창출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청년희망펀드'가 은행권에서는 은행원들의 실적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년희망펀드가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추진됐고 또 가입까지 한 상황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담을 느낀 금융지주 회장 및 은행장들도 줄줄이 가입하고 있어 관련 상품을 출시한 은행들에게는 반드시 흥행시켜야하는 상품으로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 위원장은 이날 금융위가 있는 서울 프레스센터 NH농협은행 광화문지점에서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했다.
 
앞서 한동우 신한지주(055550) 회장·김정태 하나금융지주(086790) 회장·윤종규 KB금융(105560)지주 회장은 1000만원 일시금으로 청년희망 펀드에 가입하고, 기존에 반납키로 한 연봉의 50% 해당액을 이 펀드에 넣기로 했다.
 
이들 3대 금융그룹 경영진의 펀드 출연금액은 대략 35억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광구 우리은행(000030)장도 일시금 500만원과 함께 기존에 반납키로 한 연봉의 50%를 기부하기로 했다.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지방은행장들도 청년 실업해소를 위한 임금 반납 및 청년희망펀드 가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금융사 경영진들이 가입 행열에 앞장서는 가운데 청년희망펀드를 취급하는 5개 수탁은행들은 펀드 홍보와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전날 오후부터 영업점을 통해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을 홀로 판매하기 시작한 KEB하나은행이 첫날 1억5700만원(8631건)의 실적을 올렸고 이날 낮 12시까지 총 3억4600만원(1만9528건)의 기부실적을 기록했다.
 
하루 늦은 이날부터 판매를 시작한 신한·국민·농협·우리은행 등은 청년희망펀드 판매 전담 직원을 영업점당 한 명씩 두고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펀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판매 첫 날인 만큼 구체적인 실적은 집계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앞서서 강조하는 상품이다보니 벌써부터 순위 경쟁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한 시중은행은 '5개 시중은행이 공동으로 출시했기 때문에 대상 고객을 조기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판촉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청년희망펀드는 청년일자리 창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신탁인데, 국민들이 기부하는 형식이다. 다수로부터 돈을 기부받기 때문에 '펀드'라는 명칭을 쓰고 있지만 가입자들에게 운용수익률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기부금과 그 운용수익은 정부가 설립키로 한 청년희망재단(가칭)의 청년일자리 사업지원에 사용된다. 한마디로 투자상품이 아니라 돌려받지 못하는 기부 상품이기 때문에 국민적인 판매 행열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제안하고 1호 가입자로 나선 분위기에 은행들은 판매 실적에서 뒤쳐질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청년희망펀드의 성격이 공익성이 경쟁 구도로 몰아갈 것은 아니다"면서도 "매일 판매 실적을 보고하는데 실적이 안좋으면 눈치가 보이기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영업점에서는 국민들의 가입 행열이 끝나고 나면 은행원들 차례라는 말이 벌써부터 돌고 있다. 상품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직원의 이름으로 가입하거나 지인이나 가족을 동원하는 이른바 '자폭통장'은 잘 알려진 얘기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판매 첫날이다보니 아직까지 지점이나 개인 할당량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없다"며 "하지만 전 경영진이 가입했는데 직원들도 당연히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국민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순수한 기부로 추진돼야 할 청년희망펀드를 강제 할당으로 인해 본연의 취지를 훼손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며 "청년희망펀드가 강제적 실적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수탁은행들에 각별한 주의와 경계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종료 직후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가입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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