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헬조선'에 뜬 서러운 보름달

입력 : 2015-10-02 오전 6:00:00
최강욱 변호사
어김없이 커다란 보름달이 떴다. 어김없이 길이 막혔고 어김없이 택배가 폭주했다. 이렇게 맞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행복을 확인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자리가 되었을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아직 유효한가?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국제정세와 남북문제 이야기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늘 현안은 존재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찾긴 어렵다. 그러니 정치가 중요하다. 사회적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절하여 무엇보다 시민들을 평안하고 배부르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란 말이 새로운 유행어가 된 대한민국에서, 명절 인심과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결국 권력이 누구를 위해 행사되고 어디를 향하는지가 국민의 삶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
 
명절 뉴스 중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 모든 강의가 폐강되었다는 한 국립대 교수의 대선 출마 선언도 있었다. “박근혜는 김대중과 한통속이라 빨갱이를 돕는다”며 광주 5.18의 ‘폭동’은 북한군의 공작임을 밝혀내고 수십개의 남침땅굴을 수색하겠다는 것이다. 그처럼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를 확신하는 이들이 타진요식 공세를 멈추지 않는 와중에 자칭 ‘애국세력’들의 자중지란까지 이어졌다.
 
세월호 유족들은 여전히 길거리에서 서러운 보름달을 맞아야 했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좁고 위험한 공간에서 명절을 맞았다. 경향각지에서 100일은 진즉 넘기고 200일을 향해가는 고공농성이 이어진다. 이렇게 민족의 대명절에도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약속을 지키라’고 외치며 생사를 걸었다. 법에 허용된 것을 넘어 뭔가를 더 달라는 것도 아니다. 법을 존중하고 판결을 인정하라는 것뿐이었다.
 
노동부는 국감 자료에서 이번 추석에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19만 명에, 체불임금은 총 8539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식집계가 그렇다는 것이니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불을 꿈꾼다는 우리나라의 노동행정이 과연 노동자를 위해 작동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9월 중 임금피크제 완료를 지시하고 여당은 연내 일반해고 유연화 법안 발의 및 통과 등을 호언한다. 정규직인 아버지를 쉽게 해고한 다음, 아들에겐 파견직, 계약직, 임시직 일자리 등으로 쪼개서 나눠 주는 걸 정부는 '독일식 노동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몇 년을 힘들게 싸워서 약속을 받아내도,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해도 약속이행을 하지 않는 기업들을 비호하고, 고공감옥에 갇혀서라도 하루하루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게 필수적인 걸까.
 
유엔에 간 우리 대통령은 차기 대선주자라는 반기문 사무총장과 함께 “들불처럼” 번져 나간다는 새마을운동을 찬양했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 노동절을 맞아 가족의 안정과 행복을 위한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철학이 다르니 관심이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 가도에 혜성처럼 등장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최저임금을 두 배 이상 인상하고, 대형은행 해체와 조세 개혁으로 부를 재분배한다는 공약을 내세워 약진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대학등록금 무상지급 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미국의 유권자들을 열광하게 하는 건 왜일까.
 
그 뿐인가, 영국 노동당 당수로 새롭게 선출된 제레미 코빈이 가진 단호한 정치적 태도, 일관성, 진정성, 솔직함, 겸손함과 더불어 어머니가 짜준 스웨터를 입고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검소함과 절제는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그 와중에 이웃 일본에서는 아베 정부의 안보법안 통과를 ‘전쟁 포기, 교전권 불인정,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를 뜯어고치려는 야욕으로 규정한 젊은 세대가 깨어났다. '전공투' 이래 외면당해온 거리 집회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큰 조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리더일수록 ‘공감결핍증’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한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직언을 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부하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 하고 점점 더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 속에 빠진다는 것이다. 계층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사회관계망과 안전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어떤 미래를 부르는가. 매년 2만명 가까운 이가 국적을 포기하고 이민을 가는 현실을 ‘높은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두둥실 떠올라 구석구석 어둠을 몰아내는 한가위 보름달 같은 지도자는 정녕 우리에겐 과분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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