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벌어진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한국으로 송환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이 18년 만에 선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첫 공판은 사건이 벌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공소시효 완성과 지난 대법원의 판결, 일사부재리 원칙 등 법적 쟁점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 다툼이 이어졌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심규홍) 심리로 열린 패터슨에 대한 첫 준비공판기일에서 패터슨측 변호인은 "패터슨이 자필로 쓴 의견서에는 '조를 찌른 사람은 바로 리'이며,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이어 "패턴슨은 '리는 항상 과시를 하고, 터프 가이처럼 행세하는 경향이 있다'고 (의견서에 고백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패터슨의 살인죄 무죄를 주장하며, '일사부재리 원칙'과 '공소시효'를 법률 요건을 문제 삼았다.
패터슨측은 "(한국 법체계가) '일사부재리', (영미법으로는) '이중위험금지 원칙'을 가졌다면 (패터슨을)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사부재리 원칙이란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으로, 우리 헌법 13조1항에 명시 돼 있다.
변호인은 또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인데, 검찰은 패터슨이 공소시효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도주했다고 봐 이로 인해 시효가 정지돼 (2015년 현재) 공소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패터슨은 1년6개월 복역을 다 마치고 출소해 생활근거지인 미국으로 간 것"이라며 "이걸 도주했다고 보는 검찰의 논리는 문제가 있다"면서 "이 논리대로라면 (공소시효를 따질 것 없이) 공소가 다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패터슨이 복역한 혐의는 '증거인멸'과 '흉기소지'로, 현재 기소된 살인 혐의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르더라도 패터슨을 처벌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공소시효와 관련해서는 "공소시효 완성 직전에 있는 기소중지사범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과 같이) 고소사건 고소인이 법원에 제정 신청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 경우 법원은 공소시효의 완성을 막기 위해 공소제기를 명령할 수 있다"면서 "법조인에게있어서는 너무도 명확한 법률적 지식"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패턴슨과 함께 진범으로 지목됐던 에드워드 건 리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으로 인해 "둘 중 한명은 범인"이라는 검찰의 기소 의견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날 "사건 당시 칼로 찌른 사람은 피고인과 에드워드 건 리 중 한명이라는 게 이미 명확하다"며 "제3자일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패터슨이 살인죄 무죄로 결론날 경우, 리가 살인범이 되지만 대법원은 이미 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에 재판부는 "패터슨이 (피해자를) 찌르지 않았을 것에 대비하고 있느냐"고 검찰에 물었고, 검찰은 "대비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리가 칼로 피해자를 찌른 혐의를 무죄로 본 것"이라며 "이 사건은 리가 아닌 패터슨을(살인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기 때문에 전혀 논란이 될 만한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피고인으로 출석한 패터슨은 공판 내내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패터슨은 "재판 관련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마지막 질의에 "오늘 언급된 쟁점에 대해 하나하나 따지면서 진행하는 것인지", "일사부재리 등 법적 쟁점에 대해서도 심리를 하는지" 등 심리계획을 통역관을 통해 꼼꼼하게 물었다.
패터슨은 한미 간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미국에서 체포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한국 시각으로 22일 영장이 집행돼 기내에서 구속기소됐다.
한편 이날 공판에는 숨진 피해자 조씨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아버지 조모씨(75)는 재판을 본 첫 소감으로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그는 "1심과 2심에서 (리가 살인죄 유죄로) 넘어갔는데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는 나라가 어딨느냐"고 말했다. 패터슨이 진범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리와) 같이 찌른 것 같다"며 "에드워드 리 말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이모씨(73)는 "패터슨측 변호사는 자꾸 패터슨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패터슨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는 한국사람이 아니다"며 "미국이 어떤 나란가, 자기네 나라 국민의 죽은 송장도 찾아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어 패터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죄진 만큼 벌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아더 존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만에 지난 9월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송환되고 있다.사진/뉴시스
방글아·신지하 기자 geulah.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