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충무로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유영의 과거·현재·미래

입력 : 2015-10-30 오전 11:37:03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이유영은 지난해 영화 '봄'을 통해 혜성처럼 충무로에 입성했다. 누드모델 제안을 받고 전신 노출을 하는 민경 역에 대한 극중 설정이 먼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 노출만 있는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 선보였다. 대다수 노출 연기를 펼친 여배우들이 연기력이 형편없었던 것과 반대로 '봄'에서 이유영의 연기력은 신인답지 않게 안정적이었다.
 
그 다음 행보는 '간신'이었다. '봄'보다도 더 파격적이었다. 그가 맡은 설중매 역은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의 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여자였다. 임지연과의 베드신은 화제를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섹시함이 눈가에 가득했고,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비주얼은 야했다. 그러면서도 '봄'과 마찬가지로 연기력은 출중했다.
 
이유영. 사진/풍경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선택한 영화는 '그놈이다'다. 이번에는 노출은 없다. 하지만 귀신을 보는 소녀라는 '파격'은 일관성을 띤다. 사람의 죽는 순간을 미리 예견하는 시은은 전작과는 다른 의미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늘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그의 모습은 한층 더 성숙한 느낌을 준다.
 
충무로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유영을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기 전 '간신'을 먼저 떠올려 야한 인상이 가득한 여배우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 모습은 명랑하고 밝은 소녀였다. "전 연기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라며 자세를 낮추는 이유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꿈꾸는 미래를 들어봤다.
 
◇만만히 본 연기, 그냥 덤비다
 
1989년 한 평범한 가정의 장녀로 태어난 이유영은 서울 노원구의 '교육동네'로 알려진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똘똘한 덕에 발레, 글짓기, 피아노 등 다니지 않았던 학원이 없었다. 제대로 한 번 놀아본 적도 없다. 가정의 보호를 유독 많이 받은 예쁜 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이 싫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유영은 삐뚤어졌다.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했고, 공부도 재미를 느낀 수학과 언어만 공부했다.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니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미용사를 준비, 미용사 자격증도 땄다.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미용사가 되려고 되게 열심히 준비했었어요. "
 
그러던 중 어느 날 부모님께 미안함이 들었다. 남의 부모처럼 내 자식 대학교 OO대학 갔다는 자랑 한 번 못하는 부모님에게 미안했다. 필기는 이미 틀렸고, 실기를 통해 대학을 갈 수 있게 목표를 정했다. 무용이나 음악을 떠올렸지만, 어렸을 때부터 준비해야한다는 탓에 포기했다. 그 때 문득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연기가 만만히 보였다.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과감히 '그냥' 연기에 덤볐다.
 
이유영. 사진/풍경엔터테인먼트
 
◇대사 한 마디도 못 뱉다
 
뭐 어려울 거 있나 싶어서 덤볐던 연기의 출발점부터 이유영은 스텝이 꼬였다. 연기학원에서 첫 대사 연기를 하는데 한 마디도 못했다는 것이다.
 
"대본을 들고 말을 해야 하는데 한 마디도 못하는 거예요. 연기도 아니고 읽는 거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연기를 할 상태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책도 읽고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하시더라고요. 뭐가 부족한지 알고 그 때부터 경험을 쌓는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다니고 견문도 넓혔다. 전시회, 미술관 등 문화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섭렵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성격도 많이 밝아졌어요. 그러면서 연기 준비도 꾸준히 했고요.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사라졌고, 부모님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했어요. 저 자체가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연기를 적극 권유했어요. 제가 바뀌는 게 보이니까요. 연기에 재미도 붙였죠."
 
◇22살에 붙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20세부터 준비했던 연기의 결실은 22세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합격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한국예술종합대학교는 국내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을 배출하는 학교로도 유명하다. 이선균부터 진경, 이희준, 김고은, 한예리 등 연기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그 땐 진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힘겹게 합격했지만,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일부로 친구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원래 혼자서 준비하다보니까 굳이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게 됐어요. 낭비라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혼자 책을 읽었어요. 의도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된 거죠. 그러다가 단편 영화를 찍었는데, 제가 부족한 게 보이더라고요. 낯가림이 너무 심했어요. 그 때 연기를 한다는 건 하나의 팀워크를 이룬다는 거기도 한데, 낯가림이 너무 심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과 잘 어울려요."
 
영화 '봄'에서 미경 역을 연기한 이유영 스틸컷. 사진/필라멘트픽쳐스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봄'
 
학교생활을 하던 중 소속사와 계약을 맺게 된다. 이런 저런 시나리오를 읽어보던 중 한 시나리오가 눈에 밟히게 된다. 제목은 '봄'이었다.
 
신인으로서는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꽤 수위 높은 노출신이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외설적이거나 선정적이지는 않지만 수위 높은 노출이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저 이 작품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었다.
 
"영화가 정말 예쁜 거예요. 시나리오 읽으면서 아름다운 영화로 느껴졌어요. 그 때 제 나이가 25살이었고요. 제 몸을 아름답게 기록해 둘 수 있으면 했어요. 나이 먹어서도 꺼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일 것 같았어요."
 
'봄'을 통해 이유영은 단번에 주목을 받는다. 밀라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은 물론 부일영화제 신인여자연기상 그리고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상 여자 신인상 등을 휩쓸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처음에 밀라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으로 노미네이트 됐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믿어지지도 않았고요. 이후에 상을 받는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사실 외국 배우들한테 밀릴 줄 알았거든요. 얼떨떨했어요. "
 
이유영은 상을 받기 얼마 전 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이별을 했다.
 
"노미네이트 됐다고 알려드리니까 힘들어하는 중에도 기뻐하셨어요. 그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후에 상을 받게 됐어요. 그 때 '아버지가 절 보고 계시구나. 아버지가 준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상은 감사함과 부담감이에요.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기를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줘요."
 
영화 '간신' 속 설중매를 연기한 이유영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파격, 또 파격 '간신'
 
자신의 이름을 알린 이유영의 다음 작품은 '간신'이다. 김강우, 주지훈, 임지연 등이 출연하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 작품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굉장히 재밌는 작품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유영에게 '간신'은 그리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또 한 번 노출을 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부담감이 문제였을까, 2차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다른 작품을 고르려는 사이 설중매 역으로 다시 러브콜이 왔다. 신인으로서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간신'에 합류했다.
 
극중 그의 섹시하고 도발적인 매력은 상당하다. 자신의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신분상상을 노리는 인물이다. 극중 설정 뿐 아니라 후반부 임지연과의 베드신까지 충격적이다. 여배우로서는 쉽게 도전하기 힘든 작품임은 분명하다. 이유영 역시 촬영 내내 힘들었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촬영 중에도 정말 힘들었어요. 시나리오 읽을 때만 해도 그 장면이 그렇게 강하게 묘사될 줄 몰랐거든요. 수위가 그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촬영 중간에 알게 됐어요. 시사회를 보고 나서도 우울함이 꽤 오랫동안 지속됐어요. "
 
영화 '그놈이다' 이유영 캐릭터 포스터. 사진/CGV 아트하우스
 
◇귀신을 보는 소녀 '그놈이다'
 
'간신' 이후 몸을 추스른 후 다시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인상이 남았던 작품이 '그놈이다'라고 한다. 이 영화는 범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범인이 공개되고 나서도 긴장감을 유지한 작품이다. 이유영이 맡은 역할은 귀신을 보고, 죽을 사람의 미래를 예지하는 소녀 시은이다. 이번에는 옷을 벗지 않았다.
 
"일단 15세 영화여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뜻 깊기도 해요.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정말 재밌었어요. 시은 캐릭터도 한국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인물 같았어요."
 
주원과 유해진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이유영은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발한다. 귀신을 보는 설정 때문에 무섭다. 그러면서도 늘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광녀' 취급을 받는 점에서는 동정심도 유발한다. 한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전달한다. 연기적인 면에서 굉장히 안정적이다.
 
"두려움, 불안함, 공포, 한편으로는 청순한 소녀도 전달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될지 모르겠어요. 맨 처음에는 '꽃잎'의 이정현을 생각했는데,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많이 수정됐어요. '시은이는 예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시은이처럼 고통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영상 덕분에 시은에게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작품 내에서 이유영은 다소 청순한 인상을 남긴다. 전작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다. 청순과 섹시 두 가지 면 중 이유영이 더 많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
 
"저는 단아하고 청순하다고 생각해요. 얼굴 보시면 선이 안 굵잖아요. 평소 여리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보신 분들은 제가 되게 셀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 세지 않아요. 하하."
 
이유영. 사진/풍경엔터테인먼트
 
◇평범, 그리고 인간적인 배우
 
'그놈이다' 홍보 활동이 한창인 가운데 이유영은 수업도 빼놓지 않고 있다. 연기와 관련해서는 매사 열심히라는 그다. 비주얼과 연기적인 면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어떤 배우의 삶을 꿈꾸고 있을까.
 
"평범하면서 인간미가 있는 배우요."
 
무슨 의미인지 애매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예전에 이창동 감독님을 뵌 적이 있어요. 이 감독님께서 '여배우들은 집에만 있고 사람들 잘 안만나고 특별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너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너가 맡을 역할은 대부분 평범한 여자일텐데,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살아야 연기도 늘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정말 크게 공감했어요. 그 때부터 평범하면서 인간미 있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저만의 솔직함과 자유로움도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함과 자유로움을 아는 여배우 이유영은 이제 배우로서 첫 발을 뗐다. 안정적인 스타트 이후 매 작품마다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유영은 세 작품 사이에 청순하면서도 섹시하고, 귀여우면서도 도발적이다가 때론 무섭기도 하고 때론 연민을 느끼게 하는 얼굴을 보였다.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그의 다음 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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