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경기 회복세가 완만하고 물가상승률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또 미국 금리 인상에도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빠져나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3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국내 경제의 회복세가 완만하고 물가도 당분간 낮은 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므로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되, 대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대된 만큼 제반 리스크 변화에 유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미국의 금리가 인상되면 국내 통화정책과는 별도로 시장금리는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기준금리는 국내 경제상황에 맞춰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성장세를 지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져가는 게 기본적인 인식"이라고 말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으로는 가계부채의 증가세와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 중국의 성장세 둔화 및 신흥시장국의 금융불안과 자본 유출입 동향 등을 꼽았다.
특히 한은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시에 대규모로 유출되고 그에 따른 금융불안이 크게 확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는 신흥시장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대외건전성이 과거에 비해 개선된 데다 양자간, 다자간 통화스와프 확대 등으로 금융안전망이 확충되면서 유사시 자금유출에 대한 신흥시장국의 대응능력이 상당히 강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액이 크게 증가하고 기초 경제여건이 여타 신흥시장국 수준을 비교적 크게 상회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지난 1994년 2월∼1995년 2월, 1999년 6월∼2000년 5월, 2004년 6월∼2006년 6월 등 3차례 금리를 인상했을 때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경제 수치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경상수지는 과거 인상기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1.4∼1.9%를 기록했지만 2010∼2014년에는 평균 4.1%로 높아졌다. 외화부채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도 1990년대에는 26.3∼28.3% 수준에 그쳤으나 2009∼2013년에는 79.7%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명목 GDP 대비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액 비율도 1990년대 0.9%에서 2010년대 0.6%로 크게 낮아졌다.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의 안정성을 유형별로 따져봐도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장기투자 성향이 강한 채권자금 비중은 과거 미국의 금리 인상기에 20%대 초반에서 올해 2분기 29.6%로 높아졌다. 반면에 자금유출 가능성이 높은 차입금 비중은 1990년대 중반 60% 내외에서 올해 2분기 19.3%로 낮아졌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 상승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표시 자산에 대한 투자 선호가 높아진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윤면식 부총재보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외화 유출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일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대한 대응능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은은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유출가능 자금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클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금 잔액은 지난해 말 7287억 달러로, 직전 금리 인상 시점인 2004년 6월 말(2543억 달러)의 3배 수준에 이른다.
한은은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와 폭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만큼 유사시 위험회피 성향이 확산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은은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의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외환시장 안정 노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대외 불확실성이 크게 증폭돼 국제금융시장에서 불안이 확산될 경우에 대비해 평소 정부와 함께 거시경제여건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필요시에는 '통화금융대책반'을 가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를 열고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