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너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발리 비스트로(Bali Bistro)>

대학가

입력 : 2015-11-13 오전 10:02:50
“나중에 연락해~밥 사줄게”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빈말이다. 여기서 ‘나중에’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불특정한 먼 미래다. 하지만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새내기들한테 이 말은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말이다. 새내기들은 밥을 얻어먹고 또 선배들과 더 친해질 기회를 만들기 위해 1학기 초에 열심히 밥 약속을 잡는다. 줄여서 일명 ‘밥약’이라고 한다. 선배들 또한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는 것이 퍽 즐겁다. 밥약이 많이 잡힐수록 나는 인기 있는 선배이다. 더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수록 나는 예쁨 받는 후배이다.
 
발리 비스트로를 알게 된 것은 이 밥약때문이었다. 나는 새내기였고 밥을 얻어먹는 입장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선배와의 밥약이었는데, 그녀는 정말 맛있는 집을 안다며 나를 일명 ‘개골목’으로 데려갔다. ‘개골목’은 서강대학교 정문에서 신촌역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나오는 골목이다. (많은 서강대 학생들이 이 골목에서 술을 먹고 ‘개’가 되어 날뛰는 바람에 ‘개골목’으로 불린다.) 대낮부터 술을 사주시려나? 하고 조금 겁먹은 찰나, 내 앞에 발리 비스트로가 나타났다.
 
 
사진/바람아시아
 
이름만 듣고는 술집인 줄 알았는데 건물 외관은 고급 레스토랑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발리 비스트로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이었다. 메뉴판을 들여다보자 온통 모르는 메뉴뿐이었다.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향이 강하다던데..먹어 본 적도 없는데...내가 이 선배한테 미움을 사서 일부러 날 이런 곳에 데려온 것은 아닐까?’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나 대신에 그녀가 알아서 주문을 해주었다. 그리곤 밝은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맛있을거야”
 
 
<발리비스트로> 메뉴판. 사진/바람아시아
 
<발리비스트로> 메뉴판. 사진/바람아시아
 
 
음식이 나왔다. 그녀가 주문한 메뉴는 ‘나시고랭’과 ‘미고랭’이었다. ‘고랭’은 인도네시어로 볶음을 뜻하고 ‘나시’는 밥을 ‘미’는 면을 뜻한다고 한다. 볶음밥과 볶음면인 것이다. 일단 비주얼은 근사했다. 양도 푸짐했다. 그녀가 먼저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어봐. CNN이 선정한 맛있는 세계 음식 2위가 바로 이 나시고랭이래.” 조금 안심이 되었다. 숟가락을 들어 크게 밥 한입을 먹었다. 어라? 면도 한 젓가락 집어 먹었다. 우와...깨달았다. 이 선배는 나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격하게 아끼는 거다.
 
 
나시고랭. 사진/바람아시아
 
미고랭. 사진/바람아시아
 
그 후로도 나는 몇 번이나 더 발리 비스트로를 방문했다. 인도네시아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주로 저녁시간에 이곳을 들려서 그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젊은 사장님이 직접 음식을 서빙해주셨다. 처음엔 너무 젊어보이셔서 아르바이트생인가 했지만, 늦은 시간에 직접 가게를 닫는 것을 보고는 사장님이시구나 확신했다. 개강 후 오랜만에 발리비스트로를 찾았다. 역시나 사장님이 계셨다. “혹시 인터뷰를 진행해도 될까요?” “저희가 3시부터 5시까지 break time인데 괜찮으신가요?” “네,물론이죠.”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발리비스트로를 운영하고 있는 이기동입니다. 반갑습니다.
 
가게 상호가 ‘발리비스트로’잖아요. 전부터 뜻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저희가 인도네시아 음식점이다보니 'Bali'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섬인 발리에서 따왔고요. ‘Bistro’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저희는 작은가게라는 뜻으로 썼어요. 발리에 있는 작은 가게이다, 뭐 이런 느낌으로.
 
그렇게 작은 가게는 아닌 것 같은데.(웃음)가게를 여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그새 꽤 입소문을 타서 이곳이 ‘맛집’으로 불리고 있거든요. 점심시간에는 빨리 오지 않으면 자리가 없던데.
-아 정말요?(웃음) 감사합니다. 더 많이 노력해야겠네요. 가게는 2년반정도 되었어요. 저희가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그럴싸한 홍보를 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많이들 하시는 페이스북 같은 sns도 일절 안해서요. 이런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네요.
 
개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면 이 음식점이 가장 눈에 띄어요. 외관도 그렇고 내관도 그렇고 독특한 인테리어 때문인 것 같아요. 인테리어도 사장님이 직접 다 하신거죠?
-네. 그럴싸하게 인도네시아 풍이 나도록 노력해봤어요.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무래도 그림이에요. 저희가 직접 다 산거거든요. 야외 테라스에도 처음에는 인도네시아 느낌을 내기 위해 파라솔을 많이 비치해두었었어요.
 
 
사장님이 가장 신경 쓰셨다는 그림들. 사진/바람아시아
 
맥주가 먹고 싶어지는 야외 테라스. 사진/바람아시아
 
인도네시아 풍의 실내 인테리어. 사진/바람아시아
 
 
인도네시아 음식이 보편적인 음식은 아니잖아요. 다른 음식도 아닌, 인도네시아 음식점을 차리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혹시 있으신가요?
-인도네시아 음식이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훌륭한 음식들이 굉장히 많아요. 잘 아는 이유가 제가 인도네시아에 태어나서 20년간 살다가 한국에 온거거든요. 주방에서 요리하는 친구들도 다 한국 사람이긴한데 인도네시아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이 친구들과 뭉쳐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음식을 하자 해서 발리비스트로를 차리게 되었어요. 사실 가게를 차리기 전에는 원피스,건담 ,피파같은 만화나 게임을 제작하는 일본 회사에서 일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같이 일하는 친구들하고 같이 자취를 할 당시 친구들이 갑자기 일을 다 그만두더라고요? 저도 서른이 되기 전에 재밌는 일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일을 그만뒀어요(웃음). 타이밍이 잘 맞았죠.
 
아무래도 저같은 경우도 그렇고,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음식에 가지는 편견이 있잖아요. 향신료 향이 강하다는 편견. 그런데 이곳 음식은 그런 향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인도네시아는 지역별로 음식이 다양해요. 자바섬이라고 저희가 살았던 지역은 중국계 영향을 많이 받아서 볶음 음식이 많아요. 저희가 판매하고 있는 음식들도 볶음 음식이 많고요. 반대로 수마트라쪽은 인도 영향을 받아서 살짝 카레 향이 나는, 코코넛 밀크를 많이 쓰는 음식들이 주를 이뤄요. 또 발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슬람교가 아니라 힌두교라 돼지고기를 먹기 때문에 훌륭한 돼지고기 음식들이 많죠. 저희도 한국 사람들이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는 걸 알아서 여러 가지 인도네시아 음식들 중 가장 무난하고 보편화된 음식들만 제공하고 있어요. 한국 사람들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요. 하지만 가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오시면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준비해드리기도 해요.
 
저도 처음에 먹을 때는 가장 기본 메뉴인 나시고랭과 미고랭부터 도전했었어요. 아, 요리가 나오면 항상 옆에 누룽지 같은 게 같이 있던데 그건 뭐에요? 제 친구는 밥보다 그게 더 맛있대요(웃음).
-하하. 그건 ‘끄루뿍’이라고 해요. 인도네시아 누룽지죠. 한국식 알새우칩 같은 거랄까.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맛일거에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걸 밥과 함께 먹기도 하고, 부셔 먹기도 하고, 국물에 찍어서 먹기도 해요. 인도네시아에 있는 어느 식당을 가나 끄루뿍을 볼 수 있어요. 언제든지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옆에 준비되어 있죠.
 
사실 처음에 가격만 보고는 한끼 식사로 조금 비싸다싶었는데 양이 장난이 아니더고요. 제가 나름 대식가인데, 여기선 항상 한 그릇 다 먹기도 전에 배가 불러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이렇게 음식을 푸짐하게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볶음 요리다보니 기름져서 많이 먹으면 물리실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하면 배고픈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넉넉하게 많이 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아까 말씀하셨듯이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많이 와요. 그런데 점심보다는 저녁에 오셔야 더 좋은 음식을 맛보실 수가 있거든요. 점심에 파는 음식이 질이 낮다 이런게 아니라 아무래도 점심에 한꺼번에 많은 주문을 받아서 여러 볶음밥을 한번에 만들다보면 맛이 떨어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많이 찾아와주면 좋긴 하면서도 음식을 더 잘 내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도 들어요. 개인적으로 저녁 시간에도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녁에는 더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이 나갈 수 있고 꼬치 요리와 같은 메뉴도 추가되거든요.
 
인도네시아 음식에 대한 애정이 정말 많으신 것 같아요.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인도네시아 음식의 매력은 뭔가요?
-일단 앞서 말했듯이, 음식이 지역별로 정말 다양하구요. 한국 사람들이 매운 맛 좋아하잖아요. 인도네시아 음식의 ‘매운맛’은 한국의 매운맛과 조금 다르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또 다양한 향신료가 합쳐져서 내는 깊은 맛도 일품이고요. 한국에선 맛볼 수 없는 맛이에요.
 
인도네시아 음식의 매운맛이라...다음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네요.(웃음) 음식을 파는 사람으로서 추구하는 가치가 있으신가요?
-아까 가격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사실 다른 아시아 음식에 비하면 저희가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에요(웃음). 저희는 학생들에게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드리고 싶어요. 이윤이 조금 덜 나더라도, 좋은 가격대에 잘 나오는 음식을 추구한다고 할까요.
 
혹시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일단 계속해서 자리를 잡아 나갈 예정이에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서 더 크게 늘리고 싶은 생각은 사실 없어요. 그냥 ‘인도네시아 음식’하면 발리비스트로가 떠오르게끔 사람들 기억에 남는 음식점이 되고 싶어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은 발리비스트로다’라고 말할 수 있게요. 다만, 더 성장하게 되면 인도네시아 음식과 비슷한 베트남이나 태국 음식점을 하나 더 차려보고 싶어요. 저는 아시아 음식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어요. 왜냐면 쌀국수나 이런 게 시중에 너무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잖아요. 막상 베트남에서는 매우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데 너무 비싸게 책정된 것 같아요. 그런 걸 좀 없애고 누구나 인도네시아 및 아시아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볼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사실 저도 이 인근 연세대학교 졸업생이에요. 올해 제가 서른인데 졸업한지 얼마 안됐죠.(웃음)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취업 문제로 두려움에 앞서 마음대로 꿈을 못 펼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요. 남들이 하는 거 다 똑같이 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제 주위에 잘 된 친구들을 보면 공통점이 다 대학시절에 자신이 좋아하던 일에 미친 듯이 몰두했었어요. 예를 들면 영상이 좋다고 카메라 들고 어디든 무작정 뛰어다니던 친구도 있었고. 그래서 지금 대학생들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눈치 보거나 뒤처지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말고 자신들의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어요.
 
 
처음 발리비스트로의 음식을 먹고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인터뷰 내내 사장님에게서도 받았다. 젊은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나와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셨다는게 멋있었고, 내뱉으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어서 감사했다. 내년에는 내가 선배가 되어 후배들을 맞는다. 정말 아끼는 후배가 생기면 나는 그를 이곳으로 안내할 거다. “먹어봐. CNN이 선정한 맛있는 세계 음식 2위가 바로 이 나시고랭이래.”
 
 
 
김아현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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