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제대로 복제약을 개발하지 않은 채로 오리지널약을 상대로 무분별하게 특허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특허법에 위배되고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특허심판원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항혈전제 '브릴린타'에 153건의 특허소송이 제기됐다.
브릴린타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으로 2013년 국내 출시됐다. IMS데이터 기준 지난해에는 41억원어치가 팔렸다. 오는 2021년 성분 자체에 대한 원천특허(물질특허)가 만료되지만 후속특허가 복제약 진입을 막고 있다.
후속특허는 2023년까지 남은 결정형특허, 2027년까지 등록된 조성물특허다. 결정형특허는 약물 용해도,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결정 형태에 대한 대한 것이고, 조성물특허는 약물의 안정화나 성분 배합 방법 등과 관련된 독점권리다. 국내사들은 복제약 시판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두개 특허에 대거 소송을 청구했다.
이중 문제가 된 것은 조성물특허다. 조성물특허에만 40건(권리범위확인 심판)이 소송이 몰렸다. JW중외제약은 해당 특허에만 5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유나이티드제약, 동아에스티, 일동제약은 나란히 3건씩, 한미약품은 2건을 청구했다. 1개 특허에 여러 건의 소송을 동시에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1개 특허에 5건의 유사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것은 국내 제약업계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국내 도입된 허가특허연계제도 취지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특허는 신규 기술을 발명한 자(업체)에게 부여되는 독점권리다. 특허권자는 일정 기간 동안 기술에 대한 독점권리를 갖는다. 특허가 만료되면 누구나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 후발주자가 반드시 특허만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송을 통해 특허를 깨면 조기에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
국내사들은 브릴린타의 조성물특허를 깨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가 개발한 복제약의 기술이 오리지널약의 특허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게 요점이다. 특허소송에서 승소하면 복제약 시판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브릴린타의 조성물특허에 1개사가 5건의 소송을 청구했다는 것은 조성물 기술을 피해 5개의 다른 복제약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5개 다른 복제약을 전부 발매할 수는 없다. 의약품 허가 기준에선 동일 성분의 의약품을 여러 개 허가를 받을 수 없고, 1개만 허가권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5건의 소송을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복제약 1개를 개발하는 데 보통 2억~3억원이 들어가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부터 5개 제품을 만들 의사가 없을 것이다. 과연 5개씩이나 현재 개발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특허를 깨기 위한 방법으로 줄소송을 걸어놓고 하나만 걸려라 하는 의도로 보여진다"고 강조했다
소송 남발은 허가특허연계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허가특허연계제도는 특허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 허가 제도에 특허 제도를 연계시킨 것으로 지난 3월 시행됐다. 무분별한 소송으로 특허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구자는 5건 중에서 4건을 취하해버리면 되지만 특허심판원은 많은 서류 접수로 행정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앞의 관계자는 "마구잡이식 특허소송을 제기해 국내 특허법의 근본적인 취지에 어긋난다"며 "독특한 경우기 때문에 국내 제약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