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지난 주말 끝난 프리미어12 한일전의 짜릿함은 스포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일본이란 합의된 '적'을 '적진' 한복판에서 무찔렀다는 서사가 모두에게 전달됐다.
이는 야구 혹은 스포츠와 대표팀이라는 속성 덕분에 가능한 스토리텔링이었다. 국제대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정이 그 안에서 작동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맞붙어 일본을 이겼다는 스포츠적인 합의가 극적 효과를 더했다. 그렇게 프리미어12는 애국심이라는 첫 번째 단추와 반일감정이라는 두 번째 단추를 연달아 착실히 끼울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우여곡절 속 일궈낸 한국의 극적 승리가 이번 대회 주최측이 벌인 '경기장 바깥'의 불공정한 시시비비들마저 승화시킨 셈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일쑤인 게 경기장 '밖' 세계다.
◇프리미어12에서 우승한 한국 야구 대표팀. 사진/뉴스1
◇스포츠는 성스럽다?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매번 성스러운 대우를 받는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승부를 가른다'는 미명 아래 국제 스포츠 대회의 속살은 꽁꽁 감춰지기 일쑤다. 대중에게는 공개된 무대 위에서 공정한 규칙을 갖고 싸운다는 일종의 판타지가 심겨진다.
바로 여기에서 경계해야 할 지점이 생긴다. 판타지를 조금만 걷어내보면, 정해진 규칙 외의 요소를 보면 스포츠의 세계가 공정하리라는 보장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국가 간 대결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경기에서 다른 국가 대표팀과 맞붙은 후 받게 되는 성적표는 사실 각국의 우수성과 관계가 없다. 스포츠가 국가의 우열을 알리는 도구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스포츠를 국가의 선전 도구로 활용하기 일쑤다.
프리미어12부터 되짚어보자. 사실 이 대회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야구를 부활시키기 위한 일본의 무리한 포석이었다. 경기 일정은 들쭉날쭉했으며 심지어 일본 대표팀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경기 장소가 이해하기 힘든 수준으로 배정되기도 했다.
야구라는 세계적인 규칙과 언어를 갖고 모인다 하더라도, 그 공통의 규칙과 언어에 도달하는 과정과 배경이 완벽히 공정할 수는 없다는 걸 프리미어12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스포츠를 통해 자국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구시대적 노림수가 일본에서 다시 한 번 발화해 경기운용에 영향을 미쳤다.
◇국가간 대결의 욕망, 스포츠에 투영
올림픽 역사를 돌아봐도 스포츠 규칙 이외에서 공정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국가 간 대결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이념을 내세워 올림픽에서 공식적인 국가별 메달 순위를 집계하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올림픽 정신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올림픽 기간만 되면 국가별 메달 순위가 미디어를 장식한다. 생활체육에 기반을 둔 북유럽이나 기타 극소수의 체육 선진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나라가 메달 개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을 덧붙이자면 쿠베르탱 또한 사실은 프랑스의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근대 올림픽을 기획했다는 설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보불전쟁 패전 이후 조국의 사기진작과 민족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올림픽을 기획했다는 쿠베르탱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어쨌든 시작이 이러하니 올림픽은 스포츠의 규칙 속 경쟁 확립에 앞서 정치권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가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욕망을 가득 채운 대회였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올림픽 또한 전 세계에 자국의 건재함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기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전쟁 폐허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을 세계에 드러내 보이겠다는 프레임에 갇혀 정부의 적극적인 '체육 강국' 정책의 연장선에 있었던 대회였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른 보복으로 1984년 LA올림픽에는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이 나서지 않았다.
이는 모두 스포츠 내에서의 공정한 규칙 적용에 앞서 다른 의지와 욕망들이 먼저 대입됐을 때의 사례다. 곱씹어보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이미지를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대회로 기억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당시 모습. 사진/IOC 홈페이지
월드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예 축구 자체를 전쟁에 빗댄 표현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축구장은 전장이 되고 선수들은 전사가 된다.
'비교적 단순한 규칙'이라는 축구의 특징이 가장 전쟁과 유사하다는 비평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맹렬한 폭격', '용맹한 전사', '전차군단' 같은 전쟁을 연상케 하는 표현도 대회 기간 내내 난무한다. "월드컵 덕분에 전쟁이 줄어들었다"는 일부의 분석은 이제 신물이 날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스포츠의 세계, 규칙 외에도 모두 공정한 걸까?
안하무인 격으로 운영되는 국제축구연맹(FIFA)을 빗대 "피파마피아"라고 부르던 것이 이제 하나의 대명사가 됐다. 축구장 규칙 이외의 요소들이 세계 축구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FIFA는 축구를 둘러싸고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데 이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세계 축구를 선도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식의 정치적 뉘앙스를 내뿜는 곳이 FIFA다. 1974년부터 1998년까지 제7대 회장을 역임한 주앙 아벨란제(브라질)가 FIFA의 유일한 비유럽권 수장이었다.
지난 7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FIFA 회장직 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현임 제프 블래터를 시발점으로 한 각종 정치공세와 온갖 권모술수가 국제 축구계를 휘감았다.
결국 정 명예회장은 후보등록조차 하지 못하고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자격 징계를 받는 신세가 됐다. 경쟁 한 번 제대로 못 해봤으니 이 정도면 아예 축구장 안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백태클이 정직해 보일 정도다.
스포츠에 목숨 거는 러시아의 경우도 빠트릴 수 없다. 러시아는 최근 국가가 육상 선수들의 약물복용을 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 여자 육상선수 율리아 스테파노바와 그의 남편 비탈리가 지난해 독일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러시아 육상은 약물에 취했다"고 폭로하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지난 13일 러시아 육상 선수단 전체의 국제 대회 출전을 잠정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징계를 해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스포츠를 통한 국가 홍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사안은 더 눈길을 끌었다. 푸틴 대통령은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스포츠는 끊임없이 도핑과의 투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도핑하지 않은 선수들까지 경기 출전 징계를 내리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하며 그의 스포츠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런 러시아 내부 분위기 안에서 폭로자인 스테파노바와 비탈리는 내부고발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현재 캐나다 망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도핑을 하고도 경기에 나서는 것이 국가의 폐부를 드러내는 것보다 괜찮다는 러시아 내 시각을 방증한다.
◇지난해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IOC 홈페이지
◇국내도 별반 다르지 않아
국내로 시선을 돌려도 공정한 규칙과 별개로 일탈은 진행형이다. 승부조작과 약물복용이라는 전형적인 일탈과 더불어 최근엔 해외 원정 도박부터 불법 스포츠도박이라는 사회적 범죄까지 스포츠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4대 프로스포츠라는 야구·축구·농구·배구 모두 과거 이런 범법 행위에 연관됐으며 지금도 그 싹을 잘라내지 못했다. 여전히 수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안도 잠시 가라앉아 언제든 떠오를 태세를 하고 있다. 모두 경기장 안에서 규칙을 준수하는 스포츠 본연의 모습을 뒤로하고 팬들에게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안기는 행위들이다.
이런 우울한 상황만 짚고 보자면 "스포츠는 곧 약물이자 대중의 아편"이라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마르크 페렐망의 지적에서 현대 스포츠는 자유로울 수 없다. "올림픽은 반동적"이라고 했던 발터 벤야민과 "비정치적인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에른스트 블로호의 비판에서도 완벽히 받아칠 말이 없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붙잡기 위해 규칙 안 스포츠와 규칙 밖 스포츠를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한 시대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