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지난 두 시즌 주장을 맡으며 동료,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던 이진영(35·LG트윈스)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팀을 떠난다. 27일 열린 2차드래프트를 통해 전체 1순위 지명 권한을 보유한 신생팀 KT로 옮기게 된 것이다. LG가 인연의 끈을 놓자 KT가 바로 데려간 이번 이적은, 2011년부터 2년에 1번씩 시행해오던 2차드래프트의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이번 이진영의 이적에 대해 팬들의 실망감은 크다. 2차드래프트를 통해 옮기게 됐다는 것은 40인의 보호선수에서 제외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진영이 LG가 보호할 40인에 제외될 만한 선수인지, 2차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선수를 지명한 팀이 원소속 팀에 지급하는 규정 보상금인 3억원에 이진영이 가게 놓아준 것이 LG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처사인지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7일 서울 더케이(The-K) 호텔에서 KBO리그 2차드래프트를 비공개로 개최했다. 지난 2011년 이후 2년마다 해오던 2차드래프트는 구단별 전력 강화와 함께 KBO리그 출장 기회가 적던 유망주 선수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번 드래프트를 통해 이진영은 전체 1순위 지명 권한이 있던 '10구단' KT에 뽑혔다. 리그에서 정상급 외야수로 꼽히던 이진영을 LG가 보호하지 않았고, 결국 KT가 지명해 이뤄진 이번 이진영의 이적 소식은 30명의 선수 중 가장 충격적인 이적소식으로서 손꼽힌다.
◇베테랑 많고 외야 경쟁 심했던 LG
이진영이 40인 보호선수에 들지 못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팬들에게 충격과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29일 오후 2시 열릴 LG의 시즌 후 팬 축제 '러브페스티벌'이 구단을 향한 청문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는 이진영의 팀내에의 위치와 성적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지난 1999년에 쌍방울 레이더스로 프로무대에 데뷔한 이진영은 통산 1832경기에서 '154홈런 108도루 837타점, 타율 3할3리(6059타수 1836안타), 장타율 4할3푼9리, 출루율 3할7푼2리'를 기록했다. 올해 타율이 2할5푼6리로써 평년에 비해 부진하긴 했지만 통산 타율 3할이 넘고 수비 실력이 여러모로 빼어난 그는 야구 팬들에게 '국민유격수'로 불리우던 리그 주요 선수다.
더군다나 이진영은 LG로 프로에 데뷔하지 않았지만 주장을 맡아 선수단을 이끌었을 정도로 팬들은 물론 동료의 신망도 두터웠다. 2012시즌 후 LG와 두 번째 FA 계약서에 사인한 그는 LG에 대한 정이 많았다.
다만 그가 스스로 선택해 입단한 LG는 최근 팀내 사정이 온전치 않다.
2003~2012년 10년간 '6-6-6-8-5-8-7-6-6-8-7'의 중하위 성적을 내던 LG는 올해 이전의 2년간 3위와 4위의 나아진 성적으로 마쳤지만 올해는 9위로써 마쳤다. 나아졌던 성적이 추락했고, 전망 또한 밝지 않다.
이같은 상황에 LG는 유망주 육성이 필요했다. 그런데 LG는 유달리 외야수 자원이 많은 팀이다. 지난해 FA로 계약을 맺은 박용택(36), 트레이드로 LG의 선수가 된 SK 출신의 임훈(30), '빅뱅' 이병규(7번·32)는 시즌내내 활약이 가능한 검증된 외야수다. 내야수를 맡다가 근래 외야수로 바꾼 김용의(30)와 군을 제대한 좌타자 이천웅(27) 또한 나름의 출전 기회를 줄만한 선수다.
이에 더해 장기적 안목으로 키워야 하는 문선재(25)·서상우(26)·정주현(25)·채은성(25) 등의 외야수 백업과 이제 한국 나이가 스물로 성장 가능성이 많은 안익훈(19)도 있다. 올해 타격이 평년에 비해 부진했던 이진영이 보호선수 40인 명단에 빠지는 데에 영향을 미쳤던 요소다.
이진영. 사진/뉴스1
◇이진영, 2차드래프트로 3억원 받고 보내는 것이 최선?
그런데 LG의 이번 결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드러내는 점이 있다. '과연 이진영을 2차드래프트로 내보내는 것이 과연 구단을 위해 최선이었냐'라는 것이다.
2차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돼 다른 팀에 가는 선수의 원소속 구단이 받을 수 있는 보상금 액수는 3억원이다. LG는 이진영을 KT에 내주고 단돈 3억원의 돈만 챙기게 됐다. 물론 이진영에게 내년 시즌 줘야 하는 6억원(2012년말 FA 계약 때 이미 정해진 연봉, 계약금은 계약할 당시 이미 전액을 지급)을 LG가 주지 않아도 되니 단순한 금전 계산 방법을 쓰면 LG가 9억원을 벌게 되는 결과로 여길 수도 있다.
이진영을 대체할 선수들이 많고 이진영의 기량 하락세가 뚜렷해 이진영이 '잉여자원'으로 분류된다면 9억원이라도 큰 이득일 수 있다. 이진영이 팀 내부에서 '이미 흘러간 선수' 취급을 받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진영은 그렇게 치부할 등급의 선수는 아니다. 올해 한 해를 부진하긴 했지만 17년간 통산타율 3할의 맹활약을 펼쳤던 선수고 2015시즌 선수단 주장을 맡았다. 야구 실력과 함께 안팎의 인기를 겸비한 주요 선수다. 상당수 팬들과 선수단의 로열티와 관계된 선수다.
정말 '이진영의 효용이 다했다'고 보면 다른 팀과의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LG는 외야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은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 이진영을 통해 다른 팀의 선수들을 데려올 수도 있었다.
LG는 이번 결정에 대해 "격에 안 맞는 선수와의 트레이드로 이진영의 자존심에 상처를 낼 수는 없었다"면서 "구단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트레이드만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게 만드는 조치'와 '팀이 지켜야 하는 선수 서열 40위에 들지 못한 상황' 중 전자가 선수 자존심 손상이 적은 것일까. LG의 팬들은 물론 야구계 일부 인사도 LG의 해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LG트윈타워. 사진/뉴시스
◇LG그룹에 대한 루머로 이어진 이진영 파문, 결과는 어찌 될까
이해하기 어려운 이번 조치에 구단에서 내놓은 발언의 해석마저 이해가 쉽지 않으니 일각에선 "LG그룹이 야구단 지원을 줄인다"는 정도를 넘어서 "(그동안 LG그룹의 사정이 어렵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이제는) 야구단 지원을 줄여야할 정도로 사정이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양상문 감독과 이진영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루머는 악성 루머로 치부할 수도 있고 설령 사실일 지라도 LG 선수단 내부에서 마무리될 이야기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은 구단 운영자금을 주는 모기업 관련 루머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번 2차드래프트 관련 결과에 대해서 각계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LG트윈스는 이번 2차드래프트를 통해 결과적으로 상당한 출혈을 겪었다. 김선규(29·NC로 이적)를 잃음으로써 부족한 LG의 불펜 구성의 쓸만한 축을 잃게 됐으며, 성장 가능성이 아직 있는 군필 선수인 나성용(27·삼성 이적)과 윤정우(27·KIA 이적)을 내줘 야수에 공백을 냈다. '20대 초반 군필 왼손투수' 김웅(22·롯데 이적)도 아쉽다.
네 선수를 내줘야하는 상황이 아쉽겠지만 이진영 한 명의 이적은 더 영향이 크다. 구단의 소중한 자산인 선수보류권을 땡처리 처분한 격이고, 올해 주장을 맡아오던 선수를 내침으로써 선수단 로열티와 팬들의 팬심(Fan 心)을 잃었다. "아무리 이익을 만들기 어려운 프로스포츠 기업이지만 'LG스포츠의 배임'이라고 판단된다"는 형태의 견해도 제기될 정도다.
LG그룹은 지난 26~27일 이틀간에 걸쳐 계열사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LG그룹의 이번 인사는 이제까지 느껴졌던 온정적 인사 스타일이 아닌 엄격한 신상필벌이 적용됐다는 평가다. LG그룹 최초로 오너가(家) 사람이 아닌 50살의 사장도 나오며 젊은 인재 발탁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찾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LG그룹의 이번 인사에 대해 각계에선 "최근 몇 년간 이어졌던 위기 돌파를 위한 승부수를 걸었다"고 평가한다. LG스포츠의 이번 2차드래프트 관련 결정도 동기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LG트윈스는 2013~2014년 외에는 지난 2002년 시즌 이후론 팀의 성적이 매년 나빴다.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진영은 단돈 3억원에 KT로 이적했고, 새로운 시즌은 4개월 후에나 시작될 예정이다. 현재로는 LG를 뺀 절대 다수가 LG의 처사를 이해 못 하는 상황이나, 결과는 우려와 다를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려와 다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 다른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LG그룹 임원 인사를 통해 LG스포츠 신임 대표가 된 신문범 사장의 첫 시작은 결코 순탄치 않다.
이준혁 기자 leej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