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
서울 양천구의 다나의원에서 수액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집단으로 C형 간염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실을 처음 터트린 이는 의사였다. 감염자 중에는 놀랍게도 해당의원 원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보건당국이 밝혀낸 감염 경로로, 주사기의 재사용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정맥주사용 의약품 혼잡제제 처치 과정에서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것이다. 피하주사를 할 때에도 주사바늘을 바꾸지 않은 채 여러 환자들에게 재사용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개당 100원도 안되는 주사기와 개당 20여원에 불과한 주사바늘을 왜 재사용했는지, 어떻게 원장 자신까지 감염되었는지 논란이 일었다. 그러다 수년 전 원장이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받은 후 정상적인 진료가 어려워지자 비의료인인 원장 부인이 원장을 대신해 수액치료를 직접 지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문점이 풀리기 시작했다.
2. 핵심은 ‘비의료인의 의료행위’
다나의원 사건이 드러난 후 대다수 언론은 앞다퉈 “뇌손상을 받은 의사가 진료를 계속한 것이 문제”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의료인이 의료기관에서 의료행위를 하다 벌어진 일’이 아니라 ‘비의료인 장사꾼(원장부인)이 의료기관에서 수액 장사를 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즉 뇌손상을 받은 의사가 진료행위를 한 게 문제가 아니라 뇌손상을 받은 의사 대신, 비의료인인 부인 주도적으로 의료행위를 한 게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원장 부인이 간호조무사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간호조무사도 의료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비의료인이다.
3. 종신의사면허와 종신전문의자격증
사건 발생 후 한 번 의사면허를 따면 평생 의사를 할 수 있는 일명 종신의사면허제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번 취득하면 평생 유효한 것이 비단 의사면허 뿐이 아니다. 전문의 자격증도 한 번 받으면 평생 유지된다.
그런데 왜 종신의사면허제도와 종신전문의자격증제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없다. 그저 의사면허를 갱신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 뿐이다. 요즘같은 분위기라면 조급증 있는 어느 국회의원께서 또 졸속으로 법안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종신의사면허제도는 왜 생겼을까. 전문성이 필요한 의사면허관리를 전문성이 없는 정부, 즉 관(官)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관 중심의 사회다. 의료도 모든 것을 관이 지배하는 관치의료 체제다. 의사면허와 전문의자격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한데, 전문성이 없는 정부가 관리책임을 맡고 있다보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사면허관리와 전문의자격관리를 각각 의사협회와 의학회에 위탁하고 있다고 하나, 의사면허 및 전문의자격증 발급을 정부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본질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4.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차이
그렇다면 선진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선진국에서는 의료인 면허관리는 정부가 아닌 전문성이 있는 민간자치기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선진국의 의료인 면허관리기구는 대부분 의사협회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고, 필자 역시 의사협회장 재직시부터 의료인 면허관리기구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해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인 면허관리기구의 설치를 오히려 많은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다. 또 다른 족쇄가 될 것을 염려해서다.
전문의 자격증 관리 방법도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크게 다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에서는 전문의 자격증을 학회에서 발급하고 관리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정부가 발급하고 관리책임을 가진다. 한 번 전문의 자격을 딴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전문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데, 선진국에서는 이를 학회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정부 소관이다. 결국 종신의사면허제도와 종신전문의자격이 유지되는 원인은 관치의료에 있는 것이다.
5. 관치의료를 벗어나는 것이 해법
이번 다나의원 사건은 관치의료의 폐해를 보여준다. 그런데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관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역주행이다. 해법은 그 반대다. 종신의사면허제도를 개선하는 방법은 관치의료를 버리고 의학전문직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면허관리의 주체를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의료는 전문영역이다. 관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의학전문직업성이 관치에 의한 타율적 방법으로 유지되고 발전될 수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고 전문영역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다. 우리도 의료인들의 질관리를 정부가 아니라 선진국처럼 전문기관에게 맡기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관치의료를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선진의료로 다가서는 길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