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비슷한 내용의 중소기업 대출 정책을 내놔 은행권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두 금융기관은 '기술금융'과 '관계형금융'이 각각 별개의 정책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관계형 금융 안에 기술금융도 포함돼 있는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하는 꼴이어서 은행권 일각에서는 "두 상전을 모시는게 버겁다"는 푸념마져 나오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주 진웅섭 금감원장의 관계형금융 확대 발언을 계기로 주요 은행들의 근심이 깊어졌다. 중소기업 대출에 따르는 리스크가 더 커질 것이란 점에서다.
관계형금융은 은행이 기업 대표자의 도덕성과 경영의지, 업계 평판, 사업 전망 등을 고려해 대출해주는 제도로 지난해 11월 기술금융처럼 담보 중심의 은행 대출 관행을 깨기 위해 마련됐다.
◇진웅섭 금감원장이 지난 11일 관계형 금융 대상 업종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사진/뉴시스
시중은행 기업여신부 관계자는 "은행은 재무제표 같은 계량적 측면이 아닌 기술력 같은 것을 연성정보로 보는 데, 관계형금융도 연성정보로 취급되다 보니 기술금융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은행 여신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기술력에 기반해 돈을 빌려주는 기술금융과 사업 전망을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관계형금융은 여러모로 겹친다.
사업전망을 좌우하는 요인 중엔 기술력도 포함돼 있어 기술로 대출 여부를 평가하는 기술금융과 일정 부분 중첩된다. 관계형금융의 대상업종이 기술력이 중시되는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업 두곳에 국한 된다는 점도 문제다.
사실 관계형금융은 그동안 은행권 내에서 '죽은 자식'으로 통했다. 은행 혁신성 평가 배점이 낮은 데다 금감원의 관리 감독 수위 또한 미약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금융위가 발간한 '은행 혁신성평가 관련 향후 추진계획'을 보면 100점이 만점인 혁신성평가에서 기술금융은 40점이나 차지한다. 나머지 60점은 보수적 금융관행개선(45점)과 따뜻한 금융(15점)이 차지하고 있는데, 관계형금융은 금융관행개선 하부 항목이며 2점에 불과하다.
단 2점이지만 은행권에선 신경 써야 할 게 하나 더 늘어나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실적에 따라 등수가 매겨지는 기술금융과 달리 관계형금융은 압박이 적은 편이긴 하나 그래도 부담이 있는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반응에 이해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용호 금융위 산업금융 과장은 "기술력 있는 기업은 기술금융, 신뢰가 쌓인 기업은 관계형금융으로 가는거지 뭐가 겹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겹친다쳐도 은행은 같은 일 하고 양쪽 기관에서 점수를 따는 거니 유리한 거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김동건 금감원 중소기업지원실 실장은 "기술금융과 관계형금융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며 "일부 은행과 기업의 요구대로 관계형 금융을 내년 부터 확대·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