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
얼마 전, 필자는 생후 40일 된 아기를 둔 젊은 엄마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다. 아기가 출생 때부터 심한 뇌손상을 입어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40일 넘게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는데 과연 아기가 살 수는 있는 것인지, 그리고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처지인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필자는 주치의와 통화를 해서 아기의 상태를 정확히 전달해주는 것까지는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것은 주치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지난 9일, 일명 ‘존엄사법’ 또는 ‘웰다잉법’으로 불리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연명의료 중단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본다.
1997년, 뇌를 다친 후 수술을 받고 중태에 빠진 남편의 치료를 부인이 극력 거부하고 퇴원을 요구하자 이를 수용했던 의료진이 살인죄로 기소를 당하는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했다. 관행적으로 환자 가족의 요구에 따라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해왔던 의료진은 충격에 빠졌고, 혹시나 살인죄를 뒤집어쓸까 우려한 의사들은 ‘가망이 없는 환자’에 대해서도 치료 중단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비를 국가가 아닌 개인, 즉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환경이기에 일선에서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하거나 무의미하게 연명치료를 받으며 살아있는 시신이 되어가는 환자를 바라봐야 하는 가족들과 의료진은 번번이 치료의 지속 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그러던 중 2008년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뇌손상을 받은 채 병상에 누워있는 ‘김할머니’의 가족들이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소를 제기함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된 논의가 사회적인 이슈로 재등장하게 되었고,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기계적 치료를 거부하면서 ‘존엄사’라는 이슈에 불이 붙었다.
이에 따라 그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가 합동으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 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2009년 10월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발표하였으나 법제화되지 못해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다. 매년 25만명의 사망자 중 3만여명이 인공호흡기의 부착 등과 같은 연명치료를 받다가 사망하고 있음에도 관련 법제도가 미비하여 의료현장에서는 끊임없는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18대 국회에서 입법에 실패한 후 2013년 1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제도마련’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이 최종적으로 보고되었으며, 이 권고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법안이 이번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하게 됐다.
이 법안의 핵심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다.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에 대해 분명히 자기의사를 표명한 경우 이를 존중하며, 환자의 결정에 따른 의사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핵심이다. 이 법안의 또 다른 핵심은 환자의 사전 의향서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 가족 또는 적법한 대리인과 의사의 확인에 의해 의사를 추정하거나 대리결정을 할 수 있다는 항목이다.
해당 법안을 두고 일부에서는 “비윤리적”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보라매병원 사건의 1심 재판에서 의사들에게 살인죄 판결을 내렸던 판사는 몇 년 후 자신의 어머니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게 되자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자 판단이 달라졌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고서 책임을 일선의 환자 가족들과 의사들에게만 떠넘긴 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번 연명의료 중단 법안은 그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대안 없는 반대는 무책임의 또 다른 말일 뿐이다.
참고로, 안락사나 존엄사 혹은 웰다잉법은 그 명칭부터 ‘좋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적극적 안락사나 존엄사는 의사의 손을 빌어 하는 간접자살 또는 살인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좋은’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객관성을 상실한 안락사, 존엄사, 웰다잉법 등의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명의료 결정(중단)이라는 정확한 단어의 사용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