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호평을 받던 프로그램도 오래 지속되면 그 호감이 비호감으로 변하곤 하는 걸까. 최근 대중들이 지겨워하는 예능 트렌드로 오디션, 요리, 육아를 들 수 있다.
생각해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엠넷 '슈퍼스타K2'가 케이블 채널로서 두 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신드롬을 이끌 때만 해도 모든 이들이 숨죽이며 바라보던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탄생한 허각 같은 인물은 가수의 차원을 넘어서 인생 역전의 사회적 신드롬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대중들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작년 치러진 '슈퍼스타K7'은 시청률이 0.8%까지 추락했다. 격세지감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K팝스타5'는 화제성이 예전만 하지 못한 상황이다.
사실 대중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 판타지 모두다.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방송 프로그램이 현실을 도외시하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현실만 보여주고 판타지를 넣지 않으면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하게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현실은 다름 아닌 경쟁사회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온 데서 생겨났다. 그리고 그 현실 기반 위에 공정한 룰에 의해 탄생한 허각 같은 판타지가 제시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반복되면서다. 한두 번은 그 판타지가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여러 차례 반복되다보니 그 판타지의 겉면을 뚫고 현실이 자꾸 튀어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저런 건 현실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야"라는 판단이 들기 시작하면 대중들의 호감은 비호감으로 돌변한다. 공감대가 위화감이 되어가는 건 시간 문제다.
한때 '아빠 어디가'에 의해 열리고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정점을 찍었던 이른바 육아예능이 호감에서 비호감이 되어버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처음에 아빠들은 그간 자신이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아이들과의 시간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판타지를 경험했다. 그래서 거기 출연하는 아이들이 마치 내 아이인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거기서도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들이 사는 모양새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다. 자식들을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슈퍼맨들을 한 때는 판타지로 봐왔지만 차츰 자신과 비교하게 되면서 이제는 위화감, 나아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예능 트렌드를 이끌었던 쿡방 역시 지금 현재 비슷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백종원 신드롬을 만들었던 '집밥 백선생'이나, 최현석이나 이연복 같은 스타 셰프의 산실이 되었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쿡방들은 물론 여전히 대중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쿡방들이 너무나 많이 생겨나고 거기를 차지한 요리사들이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이들의 독식처럼 비춰지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중들을 위해 특별한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겠다는 그 진정성은 셰프들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지만, 그것이 사업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홈쇼핑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 셰프들에 대한 불편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오디션, 육아, 요리. 지금도 여전히 방송가를 채우고 있는 프로그램 트렌드지만 이제 대중들은 그것이 식상해졌다고 불평한다. 너무 많이 노출되는 사이에 이미 판타지는 깨졌고 그 깨진 틈으로 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왜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가를 고심해야 하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