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또 다시 암초를 만났다. 이번에도 총수발 리스크다. 최태원 회장의 내연녀 파문으로 그룹이 어수선한 가운데, 횡령·배임 의혹과 함께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실정법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여기에다 비선 등 측근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최 회장을 압박하고 있다.
SK가 창조경제 활성화 뒷받침으로 최 회장을 엄호하고 나섰지만 힘에 부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감독원에 이어 검찰마저 움직일 경우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을 게 자명하다. 여기에다 내연녀와 혼외자식 고백을 둘러싼 최 회장과 그룹 내 갈등까지 더해지는 등 내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SK 한 고위관계자는 "자고 나면 터지니 지쳤다"고까지 말했다. 또 경영 차질 우려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달리 "지켜볼 일"이라며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한 언론에 서신을 보내 내연녀와 혼외자식이 있음을 밝히고,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결심을 밝혀 충격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SK의 싱가포르 계열사 버가야인터내셔널이 회삿돈으로 내연녀 김씨의 고급빌라를 매입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에 금감원은 김씨가 2008년 고급빌라를 15억5000만원에 분양받았을 때와 2010년 버가야인터내셔널이 김씨의 아파트를 24억원에 되샀을 때 외국환거래를 신고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 주목, 외환거래법 위반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14일 "외환거래는 감독원의 신고기준이 있는데 이에 문제가 있어 은행으로부터 자료를 받는 등 통상적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고급빌라 매매 과정은 향후 최 회장의 배임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버가야인터내셔널이 회사 필요에 따라 김씨로부터 빌라를 구입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김씨 거주를 위해 샀거나 의도적으로 비싸게 사준 것이라면 배임죄가 성립된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최 회장의 측근을 두고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SK는 지난달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조직을 개편하면서 김창근 의장 직속으로 통합금융솔루션팀(IFST)을 만들고, 부사장급인 팀장으로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대표를 영입했다. 은씨는 2000년 재벌가 자제들과 벤처기업인 모임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최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은씨는 최 회장의 신임을 받으면서 김준홍, 김원홍씨와 함께 최 회장의 최측근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무속인 출신인 김원홍 전 에스케이해운 고문은 최 회장을 무리한 선물 투자로 이끌어 구속까지 이어지게 한 장본인들이다. 은씨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하빈저캐피탈 아시아본부 책임자로 일할 당시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들부터 받은 투자로 펀드를 운영하다 손실을 입기도 했다. 그랬던 은씨가 이번 인사를 통해 SK맨으로 영입되면서 그룹의 소란은 커졌다.
최 회장이 그룹 경영진과 참모진을 뒤로 하고 비선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정황은 또 있다. 최 회장은 앞서 홍보대행사를 통해 이혼 결심을 외부로 공개했다.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기 이전 홍보대행사는 복수의 언론사들에 접촉해 이 같은 최 회장의 결심을 보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룹의 공식 조직이 완전히 배제된 채 비선을 통해 여론전을 한 셈이다.
최 회장이 잇단 구설에 오르면서 SK가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창조경제 활동도 빛이 바랠 가능성이 커졌다. SK는 최 회장의 특사를 전후해 대전과 세종시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우는가 하면, 지난 12일에는 보도자료를 내고 그룹 차원의 지원 수준을 대폭 끌어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창조경제혁신추진단 아래에 창조경제혁신사업단을 신설하고, 전무급 조직으로 위상을 격상했다. 실무조직도 2실(CEI기획실, CEI개발실) 5팀으로 확대한 데다, 인원도 지난해 25명에서 올해 41명으로 크게 늘렸다.
다분히 박근혜정부의 경제기조인 '창조경제'를 의식한 것으로 재계 안팎에서는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일부 창조경제 활동에 대해 (정부에)잘 보이기 위한 것이란 부정적 시각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직접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와서 보면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그룹 신년 하례식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