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미약품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무려 8조원 규모에 달하는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제약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글로벌로 도약하고 있는 한미약품이 의약품 개발 말고도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가 있다. 한미약품의 사진미술관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에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한국사진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뿐 아니라 역량 있는 국내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사진사 자료를 수집, 보존, 연구하는 전문 학술기구도 운영하고 있다. 한미사진미술관이 이만큼 성장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손영주 수석큐레이터다. 손영주 수석큐레이터는 2003년부터 한미사진미술관을 이끌고 있다. 최초, 퀄리티, 뚝심을 강조하는 그의 덕목은 한미약품의 사업 방향 정신과 닮아 있다. 지난 10여년이 한미사진미술관의 기반을 닦는 기간이었다면 이젠 한단계 도약의 시기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의 사진가와 그들의 작품들이 국내에서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한국사진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한미약품의 공익문화예술재단인 가현문화재단이 2003년 만들었다. 국내 사진예술은 한국사진미술관 설립 전후로 나뉠 정도로 한국사진미술관이 국내 사진사의 미친 영향은 크다는 평가다.
◇손영주 수석큐레이터는 한미사진미술관의 사진 전시부터 아카데미 운영, 한국사진사의 연구와 수집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사진가들이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사진제공=한미약품)
한미사진미술관의 중심에는 손영주 수석큐레이터가 있다. 큐레이터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손영주 수석큐레이터는 상명여자대학교(현재 상명대학교) 사진예술학과를 1996년 졸업했다. 전문 사진작가를 꿈꿨던 예술학도가 미술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큐레이터의 길을 걸은 것은 좌절 때문이다.
"사진과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했습니다. 당시에는 사진과를 졸업하면 당연히 사진가나 작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과를 졸업하고 바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죠. 작가는 아무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능이 없었죠. 내가 잘 할 수 있는 뭔지 고민하는 시간을 오랜 기간 가졌습니다. 작가는 되지 못하지만 작가의 작업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죠."
2001년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그는 사진 관련 교육 분야에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생소한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접한 것도 이때다. 가나아트큐레이터스쿨를 다니며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30대 중반 만학의 나이로 200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예술기획 전공)에 진학할 정도로 학구열이 뜨거웠다. 해외파 사진 전공자라는 화려한 이력을 내세우기보다는 큐레이터로 전문성을 충실히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국내에서 사진 전공자 출신 큐레이터는 상당히 드물다.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매진했던 경험이 큐레이터로서 전문성과 맞물리면서 폭넓은 시야와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좌절의 시기가 전화위복이 됐다.
한미사진미술관과는 2003년 첫 인연을 맺었다. 한미약품의 공익문화예술재단인 가현문화재단은 사진전문미술관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손영주 수석큐레이터는 가연문화재단에 합류하게 됐다. 사진예술의 저변을 넓히겠다는 목표로 의기투합했다.
"지금이야 누구나 편리하게 디지털 카메카로 사진을 찍고 사진가가 아니어도 책도 만들고 전시도 합니다만 당시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날로그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변화해가는 시기였습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사진가들은 전시할 곳이 많지 않아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기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가현문화재단은 한국 사진예술의 발전을 위해 2002년 만들어진 재단법인이다. 가연문화재단이 사진 분야 지원 사업을 선택한 것은 열악한 사진예술 환경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의례적인 문화·예술 사업보다 이왕이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장(가현문화재단 이사장)은 사진가만을 위한 지원 단체와 더불어 국내에 전무했던 사진전문미술관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게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사진 전문 미술관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인가를 받는 데도 난관의 연속이었죠. 고군분투 끝에 2003년 11월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한미약품 본사에 한미사진미술관을 개관하게 됐습니다."
주명덕 사진전 '인천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13년 동안 수많은 사진전이 한미사진미술관을 통해 소개됐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다큐멘터리사진의 거장 '워커 에반스'전과 현대사진의 거장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 이탈리아 작가 '마리오 쟈코멜리' 사진전을 선보였으며, 세계적 사진가 단체인 매그넘 포토스와 협력 전시인 '매그넘 컨택트시트' 등을 개최했다.
"고품격 전문 사진미술관을 표방하다보니 어디에서 쉽게 관람할 수 없는 작품들입니다. 기존에는 거장과 국내 원로작가 중심으로 전시를 했지만 작년부터는 미래를 이끌 30~40대의 신예작가에게 창구를 열면서 사진의 폭이라든지 다양성을 확보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전문가나 매니아 중심으로 한미사진미술관을 찾긴 했는데요, 지나가다가 방문하시는 분들이나 보도를 보고 찾아오시는 분들까지 관람객들이 매년 늘고 있어요. 사진전이 바뀔 때마다 매번 찾아보는 열혈 관람객들도 계시답니다. 연 1만2000여명이 방문하고 있어요."
한미사진미술관은 단순 사진 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사진예술 자료 수집, 보존, 관리, 연구로 사업을 넓혔다. 2006년에는 기존 19층에서 20층까지 확장 개관했다.
"미술관 소장품은 8000여점에 달합니다. 사진 관련 고서적과 희귀사진집 그리고 관련 자료를 2000여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사진사의 틀 안에서 작품을 수집·소장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 유젠느 앗제의 빈티지 작품을 비롯해 19세기 말 작가 미상의 기록 사진, 현대 작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죠. 한국 사진사의 기원을 찾고자 1880년대 한국 사진사 초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대한제국 황실사진, 천연당 사진관 등과 같은 우리 역사와 삶이 생생하게 기록된 귀중한 사진들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설립된 학술연구기관인 한국사진문화연구소가 한국 사진사의 자료 수집과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원로 한국 사진가들의 구술녹취사업은 한국 사진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자료로 조명받고 있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한국 사진사의 현 상황에서 생존한 원로작가들의 증언을 통해 관련된 자료를 수집, 비교 정리하는 작업이다. 비영리 목적으로 열람이 가능해 중요한 교육, 학술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전시 연계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전시 작가와 참여자들이 직접 대화를 나누는 라운지 토크, 한국 사진가를 소개하는 아티스트 토크,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를 운영하고 있다. 촬영실습 및 리뷰 등 실기 위주의 사진아카데미는 단순 테크닉보다 감성과 창작, 표현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진 예술의 대중화와 대한민국 사진계의 부흥에 일조하겠다고 포부를 말한다.
"사진예술하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사진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감성이 다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오셔서 작품을 관람하시면 돼요. 관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작품 옆에 작가와 배경에 대한 설명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2004년 설립 이래 한국사진계를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국내문화예술계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사진에 대한 애정만으로 힘겨운 사진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워 작품 활동을 적극 장려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국내 최초 설립된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고품격 사진미술관을 표방해 국내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거장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국내외 사진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연구도 진행해 한국 사진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약품)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