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준익 감독 "'동주', 두 양심에 대한 미안함 담았다"

입력 : 2016-02-10 오후 2:24:20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이준익 영화감독은 주로 과거를 다뤄왔다. 그의 이름을 알린 '왕의 남자'(2005)부터 임진왜란 직전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09), 조선후기 '사도'(2015), 먼 옛날인 '황산벌'(2003)과 '평양성'(2011), 비교적 가까운 역사이기도 한 '소원'(2013)까지, 이준익 감독은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 현재의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감독은 또 한 번 과거로 간다. 이번에는 역사적으로 가장 험난했고 치욕스러워 되돌아보기조차 싫은 일제강점기다.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시대의 아픔과 다퉜던 양심적인 두 인물을 되짚는다. 제목은 '동주', '민족시인' 윤동주와 그가 그림자처럼 따랐던 고종사촌이자 친구 송몽규의 이야기다.
 
'동주'가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기 전 취재진과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의구심이 섞여있었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소원'과 '사도'가 완성도 면에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 영화는 다소 정적인 이미지의 시인 윤동주를 다룬다는 점과 '암살'을 제외하곤 흥행에 실패해온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라는 점은 '과연 재밌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게다가 순제작비 5억원, 총 19회차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과 시간 역시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막상 베일을 벗은 '동주'는 연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석 달 차이로 한 집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나,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밟았고 전혀 다른 결과를 남긴 두 인물이 주는 울림은 강렬하다. 하이라이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두 인물을 명확히 대비시킨 기법이나, 윤동주의 시를 스토리 라인에 맞게 삽입한 점, 모든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해 영화의 상상력을 더한 점 등 연출적인 측면에서도 신선하다.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과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을 비롯해 비록 유명세는 없지만 누구 못지 않게 열연한 여타 출연 배우들도 빠지지 않는다. 비록 2016년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히고 있다.
 
'동주'를 기획하고 연출한 이준익 감독을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이준익 감독은 4년 전부터 꺼내고자 했던 '동주'를 펼쳐낸 것에 대해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제강점기 서로 다른 두 인물을 소개한 것에 대해 "미안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동주와 몽규에 대한 미안함"
 
영화는 철저히 두 인물의 삶을 대비시킨다.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송몽규의 삶과 그 옆에서 시대의 상처에 아파했으나 몸소 나서지는 못했던 윤동주의 차이를 보여준다. 제목이 '동주'고 윤동주의 눈을 통해 당시를 바라보지만, 영화가 진짜로 말하고 싶어 하는 인물은 송몽규다. 이준익 감독이 70여년 전 생을 마감한 두 인물을 꺼내들기로 마음먹은 시점은 4년 전 일본에서부터였다.
 
"1995년 '아나키스트'를 제작할 때부터 일제강점기를 또 그리려 했으나, 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하면서 상처가 컸다. 2002년에 가미카제 특공대 조선인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또 좌절되고 그랬다. 그러다가 4년 전 동주를 처음 떠올리게 됐다. 일본 도시샤 대학에 있는 윤동주 시비를 보고, 정지용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교토의 압천을 걷는데 문득 윤동주를 죽인 원수의 나라에서 그의 흔적이 남아 그를 기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묘했다. 그 때부터 영화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 꺼내놓으니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윤동주의 시비를 보면서, 압천의 거리를 걸으면서 이 감독의 마음에 들어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시대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싸우고, 양심적으로 고백한 두 인물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얘기다.
 
"미안하지 않나. (박)정민이가 시사회 끝나고 왜 그렇게 울었겠나. 걔가 영화 한 두 편 한 애가 아니다. '저예산 영화계의 송강호'란 말을 듣는 애다. 몽규의 삶이 미안한 거다. 죄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처럼 살았을 거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조선인 학생을 규합했다는 이유로 2년을 구형받고 생체실험을 받다가 죽었는데, 미안하지 않나. 윤동주가 저렇게 양심적으로 고백하고 떠난 것에 대해 미안하지 않냐는 말이다. 두 사람 다 일본의 대학에 합격했다.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조건은 다 갖췄는데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간 두 양심에 대한 미안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 미안함은 순제작비 5억원이라는 수치를 남겼다. 최근 개봉하는 한국 상업영화 대부분이 30억원 이상에서 제작된다. 100억원을 넘기는 영화도 종종 있다. 국내에서 상업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 제작비 5억원은 불가능한 숫자에 가깝다. 이 감독이 불가능에 도전한 까닭은 '동주'를 꼭 성공시켜야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원래는 1억5000만원에 맞추려고 했다. 하다보니까 5억~6억원이 된 거다. 왜 그렇게 했냐면, 윤동주를 영화로 했는데 '영화 망했다'라는 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난 진짜 그러면 정말 잘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제작비를 많이 들이면 망할 확률이 높지 않나. 아마 그런 결과를 만든다면 평생 빚진 기분으로 살 거 같았다. 그래서 싸게 한 거다. 제대로 만들려면 수백억원이 필요하다. 풀샷을 찍더라도 뭐가 있어야 찍을 거 아닌가. 경성, 도쿄, 쿄토 다 어떻게 할 건가. 그렇게 찍으면 망할 수도 있다. 망하지 않으려고 국내의 촌을 다 돌아다니면서 흑백으로 한 거다. 그래도 관객 40만은 들지 않겠나? 일단 하늘이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행동한 양심과 행동하지 못한 양심"
 
윤동주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알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다. 이 영화로 인해 그의 시집 '바람과 하늘과 별과 시'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더 매력적인 인물은 송몽규로 묘사된다. '어쩌다 이런 열사를 이제야 알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윤동주와 평생을 함께 하면서도 늘 한 발짝 앞섰고 먼저 행동했던 인물이다. 문학인으로서 열망이 강했던 윤동주보다도 더 빨리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윤동주에게 열패감을 주기도 한 인물이다. 영화는 한 발 뒤에 있었던 윤동주의 눈을 통해 송몽규란 인물을 소개한다.
 
"몽규는 행동한 양심이고, 동주는 행동하지 못한 양심이다. 또 행동한 비양심이 있을 테고, 행동하지 못한 비양심도 있을 거다. 둘은 적어도 양심세력인 셈이다. 그런데 울분은 누구한테 더 있을까. 행동한 양심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이 더 크지 않을까. 일본 경찰이 내란죄라는 명목의 판결문을 갖고 와서 서명을 하라고 하는데,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과 괴로움, 함이 더 깊지 않을까."
 
송몽규의 비장함은 동주보다 '나'를 먼저 되돌아보게 한다. '나 역시 그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제에 저항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마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할 관객이 적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어떤 불의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방관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몽규가 옳다거나 동주가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산 두 사람이 있었다는 거다. 나는 그저 '당신들은 어떻게 느끼느냐'고 묻고 그에 대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 다만 70년이 지나 영화로 표현된 두 청년의 삶에 대해 공감한다면, 적어도 그 양심이 아름다워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준익 감독과 강하늘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박정민은 송몽규 그 자체였고, 강하늘은 옳았다"
 
이준익 감독이 '동주'의 두 배우를 캐스팅한 시점은 2013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다. 박정민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음은 물론, 그 때는 강하늘 역시 tvN '미생'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다. '동주'는 '사도' 촬영을 함께 한 유아인도 눈독을 들인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이 감독은 '동주'에 아는 배우가 하나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유아인 대신 강하늘과 박정민을 선택했다.
 
"(유)아인이가 연기를 했어도 잘했겠지. 얼마나 잘했겠나. 근데 사람들이 기억하기에 '유아인의 윤동주'를 기억하지 않았을까. 나는 '윤동주의 OOO'을 원했단 말이지. (강)하늘이는 지금이야 인기도 많고 그렇지, 그 때는 잘 알려진 애가 아니었다. 정민이는 '신촌좀비만화'를 봤는데 연기를 엄청 잘하더라. 깜짝 놀랐었다. 몽규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같이 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 감독의 선택은 '신의 한 수'로 보인다. 두 배우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엄청난 연기를 펼친다. 특히 송몽규 역의 박정민은 이 영화를 통해 이름값을 크게 떨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감독은 먼저 박정민에 대해 "연기력이 아닌, 송몽규 그 자체였다"고 평했다.
 
"정민이는 메소드 자체가 다르다. 저 밑에 뿌리에서부터 에너지를 갖고 온다. 북간도의 송몽규 묘지까지 갔다 온 애다. 이 작품을 위해서 그 시대의 자료를 엄청 팠다. 오만 책을 다 본 거다. 현장에 와서 추출해낸 결과물인거지, 연기력으로 보여준 게 아니다. 온전히 송몽규의 모든 것을 다 체화시켜서 그 신에서 충실하게 반응을 한 거야. 의심이 가는 커트가 하나도 없었다. 엄청난 노력인 거다. 연기력이 좋다고 하는 건 함부로 말하는 거다. 연기에 대한 태도가 좋은 거다. 툭 하고 나오는 애드리브마저도 정확하다. 얼마나 몸에 달고 장착을 했으면 그러겠나. 물론 감독이 보통 선량한 의지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걘 좀 특별하다. 정말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배우다."
 
박정민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이 감독을 마치 총을 쏘듯이 속내를 털어놨다. 영화를 본 입장으로서 거침없이 쏟아낸 이 감독의 평가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박정민은 송몽규 열사의 비장함을 온몸으로 전한다.
 
"영화에서 비장함이라는 게 과하면 유치하고 약하면 맥이 없다. 기본적으로 기량이 뛰어난 친구인데, 진심을 다해서 연기했다. 진정성이 보인다. 그게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박정민을 기억하지 않을까."
 
박정민이 송몽규를 완벽히 표현한 것처럼 강하늘 역시 윤동주를 온전히 표현해낸다. 반듯한 그의 외형과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윤동주와 꽤나 닮았다. 아울러 앞서가는 몽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끄러워하고 자책하는 얼굴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겨진다.
 
"하늘이를 처음 본 게 '평양성'인데, 정말 바른 친구다. 반듯하게 서서 눈을 똑똑히 쳐다보면서 바르게 대답한다. 그런 기질이 윤동주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윤동주도 시에서 꼬고 비틀고 그런 게 없다. 정확하게 또 반듯하게 쓴다. 하늘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흡수력이 스펀지 같다. 디렉션을 주면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바로 표현해낸다. 기량이 뛰어나다. 하늘이 선택은 정말 옳았다."
 
'동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준익 감독은 새 작품 준비도 겸하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얘기를 할 거냐"고 물으니 "영업비밀"이라며 말을 아꼈다. 시나리오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화를 다루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답했다. "어줍지 않게 꾸며낸 이야기보다 실화가 주는 감정의 크기가 더 강한 자극을 주기 마련"이라는 이 감독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과거로의 회귀를 즐기는 이 감독이 주목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치열한 고증과 거듭된 고민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는 이 감독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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