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과거 몇 차례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던 경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에도 남·북의 군사적 긴장은 고조됐고, 미국은 전략무기를 보내 북한에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위험 요소가 더해졌다. 동북아 패권을 두고 벌어지는 미·중 경쟁이 지난해부터 본격화했고,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F-22 전투기 4대가 17일 한반도로 전개된다고 한다. F-22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고성능 스텔스 기능을 갖췄고, 2177km의 작전 반경을 자랑한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미군 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있다. 미국은 이미 북한의 4차 핵실험 나흘 후인 지난달 10일 장거리 폭격기 B-52를 한반도에 출동시켰고, 이후 핵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를 보내기도 했다.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 때는 핵추진 항공모함도 파견할 계획이다. 과거 미국의 이런 전략무기 전개는 주로 대북 압박용이었지만, 이제는 중국을 겨냥한 시위의 성격이 짙어졌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두고 전례 없이 반발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12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항장무검 의재패공”(항우 조카 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유방을 죽이려는 것)이라는 고사성어를 들어 미국이 사드를 배치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16일 논평 기사에서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 사회는 인민해방군이 동북지역에서 강력한 군사 배치로 대응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이 사드를 명분으로 러시아제 대공방어 미사일 S-400을 들여와 북·중 접경지대에 배치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단지 추측만은 아니란 얘기다.
한반도가 다시 열강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히 빨리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미·중 사이에 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국익을 찾고 긴장을 낮추는 외교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정부는 자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핵개발에 쓰였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있다고 주장했다가 얼마 후 증거 자료가 없음을 실토했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한미동맹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핵무장론을 설파한다. 이런 엽기적인 정부와 여당을 비판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 반전 평화운동이라도 벌일 때가 온 것인가.
황준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