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꿈을 쫓는 청소년들이 줄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3~24세 청소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국가기관으로 28.6%에 이르렀다. 여기에 공기업을 꼽은 비율도 15.4%로 꽤 높다. 이를 더하면 공무원을 선호하는 비율이 44.0%에 달했다. 선호직장 2위는 대기업으로 22.1%였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보람·자아성취'나 '발전성·장래성'보다는 '안정성·수입' 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미래의 자화상으로 다양한 직원을 꿈꿨던 아이들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같은 청소년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활동을 펼치는 곳이 있다. 서울 남산 아래 자리 잡은 청소년학교 '달꽃창작소'다. 꿈터 달꽃창작소를 꾸려온 최규성 소장을 만나봤다.
남산 아래 첫 동네 '해방촌'. 예술과 젊음이 채워지고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위 '뜨는'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달꽃창작소는 지난해 해방촌 골목에 둥지를 틀었다. 하늘과 꿈을 맞닿게 하기 위해서다.
'흙' 선생, '문화예술' 교재를 집어들다
달꽃창작소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비영리단체, 마을공동체, 청소년문화예술학교 등의 성격을 모두 간직한 달꽃창작소는 해방촌에서 청소년학교로 통한다. 달꽃창작소는 청소년들에게 공교육과 사교육 외에 제3의 교육으로 '문화예술'을 택했다. 글쓰기, 연극, 미술 등 여러 문화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
달꽃창작소는 3년전 최규성 소장이 만든 작은 모임에서 시작됐다. 최 소장은 해방촌에서 '흙 쌤(선생님)'으로 불린다. 명함에 '최규성'이란 본명보다 더 크게 새겨져 있는 이름이 '김흙'이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토양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지은 그의 진짜 이름이다.
당시 미술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최 소장은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찾은 남산 후암동에 매력을 느껴 이 곳으로 이사했다. 평소 청소년 교육에 관심있던 그는 매주 토요일에 지역 청소년 5명과 작은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이 달꽃창작소의 시초가 됐다.
"동네 중·고등학생들과 음식도 만들어 먹고, 전시도 보면서 재미있게 놀았어요.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경험이 됐죠. 동네에서 건축사무소 공간도 제공해주셔서 그곳이 토요일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늘어나고, 도움을 주는 선생님들도 생기면서 달꽃창작소는 단순 모임에서 점차 문화예술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 형태로 발전해갔다. 달꽃창작소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다. 2014년 1월부터는 여러 재능기부 선생님들과 더불어 본격적인 문화예술 수업이 매주 토요일 이뤄졌다.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영리 방과후 문화예술학교다.
지난해 달꽃창작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동안 동네 건축사무소를 빌려 교육을 운영해왔던 달꽃창작소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안정적인 교육공간을 확보하면서 주말에만 이뤄지던 프로그램이 평일로 확대됐으며, 이로써 최 소장도 미술 큐레이터 활동을 접고 달꽃창작소에만 매진하게 됐다.
"지금의 달꽃창작소까지 오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그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달꽃도 성장한 것 같아요." 최 소장은 3년 전 일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아이들을 닮아 있었다.
최규성 달꽃창작소장(왼쪽 끝)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역 내 청소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달꽃창작소
"무언가 하고 싶어요" 아이들 말에 '감동'
달꽃창작소는 다양한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때문에 프로그램도 일정한 틀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기존 틀에 대한 거부다. 영화, 농구, 게임, 댄스, 공예 등은 물론 벼룩시장, 인터넷 라디오 방송 등 체험 분야도 다양하다. 한 달에 3~4개의 상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토요일에는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기 프로젝트도 이뤄진다. 석달 가량 진행된 '상상공장'은 지난달 말 종료됐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후원으로 IT기업과 문화예술단체인 달꽃창작소가 연구해서 진행한 디지털 창의수업이다. 스마트 기기를 접목한 사진, 요리, 영상 등 다양한 영역의 수업을 진행했다. 당연히 아이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달꽃창작소에서 이뤄진 '상상공장' 수업 모습. 사진/달꽃창작소
연극놀이 아카데미 역시 큰 호응을 얻은 장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해방촌이 동네이자 일터인 10~30대가 모여 3개월간 연극수업을 진행한 후 연극공연으로 마무리했다. 최 소장은 "비록 아마추어들의 공연이지만 옆에서 같이 생활했던 동료, 자녀들이 연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에 지역민들의 호응이 컸다"며 "올해에는 40~50대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연극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달꽃창작소를 찾은 이들은 100명이 넘는다. 2013년 작은 모임에 함께 했던 청소년들 가운에 몇몇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다. 3년 동안 달꽃창작소의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자극제가 됐다. 아이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시키는 것만 했을 뿐,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극을 받은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쌤~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정말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그렇게 수동은 능동이 됐다.
학교+연구소=달꽃창작소
달꽃창작소는 문화예술을 교육하는 '학교'이자 동시대 청소년에게 적합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연구개발하는 '연구소'를 지향한다.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청소년 교육에 대한 연구를 통해 콘텐츠를 확산시켜 나가는데 목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연구해서 교육기관에 노하우를 확산시키거나 지역사회 내 기업, 단체와 연계해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주변 학교인 신광여고에서 대안학급 커리큘럼을 기획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달꽃창작소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한걸음씩 전진해가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지역 내 기업들과 연계해 사회공헌활동이 확대됐으면 하는 게 최 소장의 바람이다. 최 소장은 "우리가 지역을 기반으로 교육을 하는 것은 지역의 변화를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가진 노하우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연계된다면 지역내 아이들에게 질높은 문화예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꿈이 이뤄질 차례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