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손효주기자]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벙커C유를 가솔린이나 디젤 등 고수익 석유제품으로 바꾸어 놓아 정유사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설비’로도 불렸던 고도화설비가 최근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보통 원유를 곧바로 석유제품으로 정제할 때 남는 단순정제마진이 축소될 대로 됨에 따라 원유보다 저렴한 벙커C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할 때 남는 복합정제마진을 주요 수익원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역내 원유정제시설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벙커C유 공급이 줄어든 데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에서 해운원료로 벙커C유 사용량을 대폭 늘리면서 벙커 C유 가격과 원유가격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8월 벙커C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67.03달러로, 71. 37달러인 원유가격과의 차이가 고작 4.34달러에 불과했다.
불과 1년전인 지난해 8월 11.25달러(벙커C유 101.74달러, 원유 112.99달러)나 가격차이가 났던 것에 비하면 차이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한때 40~50달러에 육박했던 벙커C유를 디젤이나 석유제품으로 정제할 때 생기는 크래킹 마진은 최근 1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으며 원유에서 벙커C유를 거쳐 석유제품을 만들때 생기는 복합정제마진은 -2달러대까지 폭락했다.
고도화시설을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상황으로 까지 반전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듯 SK에너지는 최근 인천공장에 짓는 고도화설비인 중질유 분해시설(HCC) 완공시점을 2011년에서 2016년으로 무려 5년이나 연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조승연 LIG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이미 역내에 고도화설비가 넘쳐나고 있고 이로 인해 향후 공급이 늘어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을 간파한 SK에너지가 고도화설비 대신 배터리 소재산업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유전개발 사업 등으로 일찌감치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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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벙커C유는 주로 난방용으로 쓰이는 데 겨울이 오면 벙커C유 가격은 더 오를 것이고 복합정제마진은 더욱 축소될 것”이라며 “석유시장 전망이 좋지 않은 가운데 국내 대표 정유회사인 SK에너지가 내린 이 같은 결정은 미래를 잘 분석한 결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여전히 고도화설비 신설과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정유업체들에 대해, 조금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신재생에너지 분야나 유전개발 분야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야만 치열해지는 세계정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