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 기자] 갈수록 강화되는 금융규제에 건설사들의 부담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동성 부족으로 쓰러져 간 건설사들이 많아 금융권의 인식이 부정적인 데다 위기산업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금융권 문턱을 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란 등 해외시장에서도 자금 조달이 사업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박영식
대우건설(047040) 사장은 지난 1월 올해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향후 기획, 금융, 기술이 융합된 건설 디벨로퍼(Developer)로 나아가는 중대한 초석이 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림산업(000210)은 지난달 19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자회사인 대림C&S의 상장을 위한 공모절차에 착수했다. 업계에서는 대림C&S의 코스피 시장 상장이 민자발전과 디벨로퍼 사업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산업(012630)개발은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아 '종합부동산·인프라그룹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세우고 '넘버원 디벨로퍼'의 위상 강화 등을 핵심과제로 선정했다.
경기침체와 국제 유가 하락 등 건설업계의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대형사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사업을 기획·제안하는 '디벨로퍼'로 체질개선을 서두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자금 조달 부문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보통 디벨로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획, 기술, 금융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미 국내 대형사들은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로 기획 능력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금융이다. 저유가 상황 장기화로 시공사가 자금조달까지 맡아야 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자금 조달의 성공여부가 수주전의 핵심으로 부상한 탓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금융지원 계획이 마련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빗장이 풀린 이란 시장 공략을 서둘러야 한다고 기업들을 재촉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구체적인 지원책은 나오지 않았다"며 "해외수주 시 자금 조달 능력이 중요해진 만큼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지원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올해 이란에서 발주되는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시공자 금융 제공형태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란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정부의 금융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수출입은행은 이란 진출 국내 기업에 총 70억달러의 금융지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올 상반기 내에는 20억달러 규모의 '코리아해외인프라펀드(KOIF)'도 조성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올해 이란 인프라 시장 규모가 최대 100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지원규모를 확대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글로벌인프라펀드(GIF), 해외건설특화펀드 등과의 연계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금융권 자체 지원 보다는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책 금융이 아닌 이상 금융권이 대출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해 자금 지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올해 회계연도부터 적용되는 수주산업 회계처리 지침에 대해서도 아쉽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에 확정된 회계처리 지침에 따르면 건설, 조선 등 수주산업 기업들은 총 매출액 5% 이상인 주요 사업장의 진행률과 미청구공사, 대손충당금 정보를 재무제표 주석으로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당장 이번 1분기 보고서부터 적용된다.
업계 전문가는 "앞으로 공개되는 기업 보고서를 통해 공사 원가가 드러날 수 있어 부담이 크다"며 "발주처에게는 수주가격을 낮추는 무기로, 경쟁사에게는 적정 입찰가격을 앞세워 수주전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무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벨로퍼 변신을 꿈꾸는 건설사들이 엇갈린 정부의 금융정책에 발목이 잡힐까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세계 최대 가스전인 이란 사우스 파(South Pars) 가스전 전경. 사진/뉴시스.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