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직론직설) 김종인 대표의 야권 통합론

입력 : 2016-03-06 오전 11:46:02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야권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경륜과 내공이 묻어나는 노회한 카드였다. ‘늙은 말이 지혜가 많다’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성어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이번 공세는 전형적인 '분열 지배 전략'(divide and rule)이다. 경쟁자의 분열을 유도해 흡수하려는 정략이다. 김 대표는 당내 비상대권을 장악한 뒤 야권 재편의 선수를 쳤다. 애초 야권의 재정립은 총선 후 대선 과정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야권 분열로 당장 총선이 어려워졌다. 총선 승리 없이 차기 정권 창출은 물 건너 간다. 이번에 결판을 내야 한다. 뭉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다는 선거의 기본 명제를 김 대표는 잘 알고 있다.
 
김 대표는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 첫째, 거대 여당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 야권의 분열로 여당은 어부지리로 과반을 넘어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러면 내년 대선도 승리하기 어렵다. 이를 막는 방법은 단 하나 야당의 단결뿐이다.
 
둘째, 분당의 원인이었던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내세웠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문재인 전 대표의 2선 후퇴를 주장했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탈당했다. 하지만 이제 문 전 대표도 물러났고, 친노 핵심 물갈이도 시작됐다. 탈당의 명분은 사라졌다. 당대당 통합이 어렵다면 복당이라도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야권통합 제안을 정치공작이라고 격분했다. 김 대표의 과거 전력까지 끄집어내 맹비난했다. 지난 4일 심야 의총은 겉으로는 조용하게 끝났다. 통합 제안을 정식으로 거부했다. ‘더 이상 통합에 대한 논의는 불가하다’, ‘우리의 불꽃을 다시 살리자’고 선언했다.
 
안 대표에게 회군은 정치적 죽음이다. 죽든 살든 마이웨이로 총선을 돌파할 수 밖에 없다. 몇몇 의원들과 출마 후보자들도 당을 지켜갈 수 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간다고 공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당 대표급 의원들은 이해관계가 다르다.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선거 패배가 눈 앞에 다가와 있다. 파선하는 배에서 눈 뜨고 죽을 수는 없다. 야권통합이든 선거연대든 후보별 단일화든 무슨 수를 내야 한다.
 
양향자라는 신인 정치자객을 맞은 천정배 대표, 전혜숙 전 의원과 야당 표를 나눠야 하는 김한길 위원장은 돌파구가 필요하다. 박지원 의원과 동교동계도 줄곧 야권통합을 외쳐왔다.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입당했을 수 있다. 통합 때 지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겉은 평온하지만 내부는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야권통합 찬성파와 반대파간 격돌이 폭발 직전이다. 후보단일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김 대표는 야권통합을 계속 제기할 것이다. 성사되지 않더라도 야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패배하는 후보가 아니라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에게 표를 찍는다.
 
김 대표의 다음 카드는 정권심판론이다. 현재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반대가 훨씬 높다. 전체 정당 지지도에서는 새누리당이 앞서지만 수도권에서는 야권 지지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번 총선의 승패는 122석이 걸려 있는 수도권에서 판가름 난다. 야권이 단일화에 목을 매는 이유이다.
 
다만 선거연대든 후보단일화든 분명한 명분과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단순한 선거 승리라는 정치 공학적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정권을 맡기기에 충분하다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다. 정치철학과 가치의 재정비, 국가를 발전시킬 정책 아이디어 창출, 이를 실천할 인재들의 충원이라는 정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정치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선거연대, 정책연대, 공동정부는 이런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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