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자기 이름을 13년 만에 찾았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이래 끊임없이 당명을 개정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언제나 똑같았다. 자기 이름을 찾기까지 13년 동안 미로 속을 헤맸다. 이는 대부분 자기 집을 모르거나 애써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지부조화 속에서 일어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더불어’는 어떤 의미일까. 한국 정당사에서 순한글 용어는 이례적일 뿐아니라 국제정치에서도 ‘더불어(together)’라는 당명을 찾기 힘들다. 웬만한 중견기업마저 글로벌 네트워크로 연구개발을 하는 시대에, 집권을 해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정당치고는 너무 허약해 보인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으로 어떻게 자기 정의를 하고 있는가. 정식 영어 명칭은 ‘한국 민주당(the Minjoo party of Korea)’이다. 해외 정치학자들은 이 명칭으로는 어떤 것도 상상해 낼 수 없다. 최악의 자기소개다. 글자 그대로라면 ‘더불어’는 정치학적으로 ‘모두 함께’라는 의미인 ‘사회적(social)’의 다른 말이다. 글로벌 수준에서 이 정당을 소개하면 ‘더불어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이다. 말 그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사회민주당’이 된다.
이때부터 자기부정과 혼란이 시작된다. 갑자기 민주당은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의 치열한 이념 논쟁에 휩싸인다. 특히나 이 정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호남의 유권자들은 사민주의 정당으로 민주당을 이해한 적이 없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의 구성원들은 자기분열의 혼돈에 빠지고, 자신들이 어떤 정치세력인지 유권자들에게 자신있게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진다.
그 혼돈의 역사가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까지, 당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열린우리당(2003~2007), 중도개혁통합신당(2007), 중도통합민주당(2007), 대통합민주신당(2007~2008), 통합민주당(2008), 민주당(2008~2011), 민주통합당(2011~2013), 민주당(2013), 새정치민주연합(2014), 더불어민주당(2015)으로, 13년 동안 무려 10차례의 당명 변경이 있었다. 일 년에 한번 꼴이다.
흥미로운 점은 열린우리당 이후 숱한 당명 변경에도 불구하고 이름에서 내용상 어떤 변화도 없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름을 일 년에 한 차례씩 바꾸고 있는 정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답은 하나다. 스스로 여전히 정신분열 속에 갇혀 자기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당 강령에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 어려운 말을 정치적 용어로 바꾸면 ‘사회민주주의' 지향이다. 자기 고백으로는 ‘저희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정당입니다’라는 한마디가 필요했다.
그 말이 돌고 돌아 '더불어민주당(social democracy)'이라는 순우리말로 치환되어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이 한 마디를 대중적으로 선언하는데 13년의 세월과 숱한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당명에 있었던 중도, 개혁, 통합은 정치적으로 모두 같은 말의 다른 이름인 중도주의(centralist) 노선이다. 정치 주체가 스스로 결정을 못하니, 집단지성을 빌렸다. 지지자들의 공모를 통해 인터넷 투표를 거쳐서 집단무의식이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방법을 차용했다. 그리고 ‘사회적’이란 용어는 여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탈정치화된 ‘더불어’라는 순우리말로 작명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이 훨씬 세련되고 진화된 당명이다.
이제 민주당은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찾았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한 획을 긋는 ‘울산 발언’을 내놓는다.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선언으로, 이를 통해 한국은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결정적 단초를 만들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국정 의제화한 ‘시드니 선언’에 필적하는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다. DJ는 중요한 결정을 청와대가 아니라 간혹 열리는 지방순시 때 국무회의에서 선언했다. DJP연합에서 자민련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들이 주로 불참하는 지방 국무회의를 노려서 교묘하게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켰다. 익숙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었다.
이때부터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화 세력이 해결해야 할 지향은 민주주의 이후 과제에 대한 집중이었다. 87년 민주화 이후 과제에 대한 정치적 지향과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화 세력의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달리 말하면 민주당 이후 민주당의 자기 선언이 필요했다. 그 지향을 유권자의 집단지성을 빌어서 ‘더불어민주당’으로 구체화하는데 1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총선에서 이 이름으로 어떤 비전과 정책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