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누구보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출발은 산업안전 전문가였지만 이제 어엿한 노동운동 전문가가 됐다.
여성 국회의원으로는 드물게 환경공학을 전공한 한 의원은 안전보건공단 입사 후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자 영국으로 건너가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 의원은 공단에 재입사했으나 40대에 접어들면서 노동운동의 길로 돌아섰다.이후 2005년부터 2011년까지 6년간 안전보건공단 노조위원장과 공공노조 수석부위원장,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을 지냈다.
한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불평등해소본부장을 맡고 있다. 불평등해소본부는 일자리 분야 공약 개발기구다.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것이 큰 그림이다.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돼도 환노위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한 의원은 ‘위험의 외주화’로 표현되는 사업장 내 위험업무 하도급 관행을 바로잡아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목표다.
-노동개혁 4법 중 하나인 파견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야권에서 파견법에 반대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우선 55세 이상 고령자는 기간제법에 따른 사용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직접고용만 한다면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행법상 충분히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는 고령자를 파견으로도 쓸 수 있게 풀어주면,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들이 간접고용인 파견으로 이동하는 효과만 생길 것이다. 여기에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파견을 허용하는 건 아예 명분이 없다. 직장 내 계층 상승은 승진을 통해 이뤄지는데, 특정 직급부터 파견이 허용되면 승진이 오히려 일자리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정부가 발표를 강행한 2대 지침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 및 일반해고 요건을 명확히 해 고용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게 어떻게 고용안정으로 연결되는가. 특히 정부가 근거로 제시하는 판례들조차 취사선택된 상·하급심 판결들의 짜깁기다. 예를 들면 산별노조를 복수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었지만, 고용노동부는 판례대로 산별노조를 복수노조로 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취업규칙 변경 및 일반해고 요건에 있어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례들만 긁어모아 내놓고 판례대로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지침을 만들면 되겠는가.
-기간제법 및 파견법 개정의 명분은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의 풍선효과다.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 제한으로 편법인 간접고용이 늘었다는 말인데,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지.
반대로 정부에 묻고 싶다. 지금껏 적발된 불법파견 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어떤 조치들을 취했느냐. 또 파견과 용역을 구분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법원에서도 불법파견으로 결론 난 간접고용 사례들이 실존하지만 이렇다 할 조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사내하청과 용역을 빙자한 불법파견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게 풍선효과인가.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노동시장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제 손대기 어려운 수준이 됐으니 간접고용도 하나의 고용형태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비정규직 규제를 풀어버리자? 이런 방식으로 소득불균형과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정부는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다른 질문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환호했지만,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게 현실성이 있는 대책인지 의문이다.
미국은 최저임금으로 15달러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에 1만원이라고 해도 그때까지 물가상승률과 화폐가치 등을 고려하면 그게 엄청난 목표치인지 되묻고 싶다.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그렇다면 최저임금을 실질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경영계에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그건 별개의 문제다. 세제지원 등 다른 대책을 마련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세사업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거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만큼만 지불하라’고 하는 건 점진적으로 소득수준을 하향평준화하겠다는 이야기다.
-경영계의 주장인데, 정규직과 노동조합 등 이른바 ‘노동 기득권층’이 과보호돼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하고 신규채용이 축소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정규직의 임금은 노동자들이나 노조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노사 간 임금협상과 사측의 동의를 거쳐 정해진 것이다. 그게 많다면서, 그것 때문에 사람을 못 뽑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또 우리나라 정규직은 절대 과보호되고 있지 않다. OECD 최장의 근로시간에 따른 연장근로수당을 제외하면 임금의 평균치는 뚝 떨어진다. 금융권을 예로 들면 정액급여에 연장근로수당이 포함된 포괄임금 계약을 맺는 곳이 많다. 이런 이야기들은 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차별, 신규채용 축소가 정규직 탓이라는 건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소리다.
-지난주 산별노조를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이 장기적으로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업 간 거래를 예로 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상생이 안 되는 건 중소기업과 하청업체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거래를 끊으면 일감이 사라지는데 어느 기업이 단가를 올려달라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중소기업들이 끊임없이 국회에 단결권을 갖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나마 노동자들은 산업별 노조를 통해 사업주 단체와 교섭이 가능하다. 동일한 업종의 노동자들이 모여 근로조건 향상 등 공동의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노사관계가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관계처럼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판결이 노조의 자율성에만 얽매인 것 같아 아쉽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2년째 서울 강서구에서 지역구활동을 하고 있다. 총선이 1개월 보름 정도 남았는데, 유권자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많이 듣는지.
얼마 전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가 와 닿았다. 잘해달라더라. 우리 당이 예뻐서 지지하는 게 아니다, 대안이 없어서 지지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하더라. 연세가 있는 분들은 국회가 좀 생산적으로 변해야 한다, 품격 있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최근 당 내외 악재가 많다. 야권 분열에 북한의 로켓발사까지 겹치면서 보수층이 결집하는 모양새다.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다만 안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선거에 연결하지 말고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안보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 대한 피로감도 있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자꾸 안보 문제를 정치 문제로 키우는데 그건 결코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
-20대에 당선되면 또 환경노동위원회를 택할 것인지.
그렇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게 많다. 대표적으로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쓰는데, 1000인 이상 대기업을 보면 직접고용 정규직은 20% 정도고 나머진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중에서도 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위험한 작업들을 도맡아 한다. 기업에선 관리가 귀찮으니 업무를 통째로 용역이나 하청업체에 줘버리고, 사고가 터지면 업체를 갈아치우는 식이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 이익을 재투자하는 공헌도 좋겠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한 의원은 어떤 사람인지.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사람,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