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 등 후진적 기업문화에 조직건강도 '빨간불'

대한상의·맥킨지 '한국기업문화 종합진단'…77%가 글로벌 수준 하회

입력 : 2016-03-15 오전 11:00:00
국내기업 조직건강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상습적인 야근과 상명하복식 업무 지시, 비합리적 평가시스템 등으로 기업 조직이 병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후진적이고 구시대적 기업문화의 뿌리를 찾아내 기업운영의 소프트웨어 자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15일 대한상공회의소와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간 국내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직건강도 진단은 맥킨지 조직건강도(OHI : Organizational Health Index) 분석기법을 활용했다. 리더십, 업무시스템, 혁신분위기, 책임소재 등 조직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사항을 평가·점수화해 글로벌 1800개사와 비교했다. 
 
100개 기업 중 77개사, 글로벌 기준 하회
 
조사 결과, 100개 국내기업 중 글로벌 기업보다 약체인 기업은 최하위 수준 52개사를 포함해 77개사로 나타났다. 이중 중견기업은 91.3%가 하위 수준으로 평가됐다. 상위 수준으로 진단을 받은 기업은 최상위 수준 10개사 포함 23개사에 그쳤다.
 
세부영역별 진단결과를 보면 ▲리더십 ▲조율과 통제(시스템) ▲역량 ▲외부 지향성 등 4개 영역이 취약했고, ▲책임소재 ▲동기부여 등 2개 항목은 우수했다.
 
자료/대한상의
 
조직 건강을 바라보는 경영진과 직원간 시각차도 뚜렷했다. 경영진은 자사의 조직 건강을 최상위 수준(71점)으로 평가했지만 직원들은 최하위 수준(53점)으로 진단했다. 특히 ▲리더십 ▲문화 및 분위기 ▲방향성 항목에서 큰 격차를 나타냈다. 
 
지속적인 성과창출을 가능케 하는 차별적 조직운영 모델인 '지속성장 DNA' 확보 여부 조사에서는 50%가 해당 DNA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평균치는 66%였다. 
 
지속성장 DNA 유형으로는 대다수 기업이 '실행중심형(전사적 개선·혁신활동)' DNA를 갖고 있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실행중심'(64%), '시장중심'(23%), '리더십중심'(7%), '지식중심'(6%) 등으로 다양했다.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우리 기업은 아직 제조혁신 역량을 중시하고 선도기업 캐치업을 도전목표로 설정해 빠른 실행을 하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실행중심형만으로는 급변하는 시장 패러다임에 부응해 능동적인 변신과 다양한 사업기회 포착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상습적 야근·여성 근로자 차별 등 전근대적 문화 여전
 
아울러 대한상의와 맥킨지는 한국형 기업문화도 심층 진단했다. 직장인 4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기업문화 실태 진단’에서 직장인들은 '습관화된 야근'을 가장 심각한 기업문화로 꼽았다.
 
야근, 회의, 보고 등 한국 고유의 기업문화에 대한 호감 여부를 조사한 결과 '습관적 야근'이 31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야근의 단초를 제공하는 ▲비효율적 회의(39점) ▲과도한 보고(41점) ▲소통없는 일방적 업무지시(55점)도 개선돼야 할 항목으로 꼽혔다.
 
야근문화의 근본 원인으로 대한상의는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와 상명하복의 불통 문화를 지목했다. 대한상의는 "조사과정에서 퇴근 전 갑작스런 업무 지시나 불명확한 업무 분장으로 한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경우, 업무 지시 과정에서 배경이나 취지에 대한 소통이 부족해 일이 몇 배가 늘어 야근하는 사례 등이 수시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자료/대한상의
 
여성 근로자에 대한 배려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은 '여전히 여성이 평가·승진 등에서 불리하다'(49점)고 응답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여성들은 34.7%가 '출산육아로 인한 업무 공백'을 꼽은 반면 남성들은 23.7%가 '여성이 업무에 소극적'이라고 답해 시각차를 보였다. 대한상의는 “육아를 위한 불가피한 상황조차도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야근 핸디캡과 사내 눈치보기가 여성의 당당한 조직생활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규범 준수와 상생협력 수준은 모두 61점으로 긍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다만 글로벌 기업과 비교를 위한 설문에서 국내기업은 직업윤리 준수 75점, 비즈니스 파트너십 59점, 지역사회 공헌 52점으로 3개 항목 모두 글로벌 기업 대비 하위권 내지 최하위 수준에 그쳤다. 국내기업의 규범 준수와 상생협력 실천 노력이 일부 개선됐지만 글로벌 기업과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는 평가다. 
 
이를 기반으로 대한상의는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 ▲비합리적 평가보상 시스템 ▲리더십 역량 부족과 기업 가치관의 공유 부재를 전근대적 기업문화의 3대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정시 퇴근을 유도하기 위한 일제 소등', '여성인재 활용을 위한 육아휴직과 보육시설 확대' 등으로는 전근대적 기업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원인별 액션 아이템을 마련해 기업문화 선진화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사업원칙 확립, 업무지시 및 피드백 적합화, 업무배분 원칙 확립, 조직목표와 개인과업 동기화, 성과중시 평가체계 확립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현재의 조직운영 방식으로는 저성장 뉴노멀시대 극복도, 기업의 사회적 지위 향상도 힘들다"면서 "지속성장의 DNA 형성, 구성원의 조직몰입, 사회적 신뢰 확보를 위해 피처폰급 기업운영 소프트웨어를 최신 스마트폰급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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